[데스크 칼럼] 아름다운 퇴장…

2008-09-22     제주타임스

지혜로운 사람에겐 남다른 점이 있다.

뛰어난 분별력과 과감한 결정, 비전,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인내….

출처진퇴(出處進退)의 지혜 역시 그런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미덕의 하나다.

권력이든 재물이든 한 번 잡으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으려는 인간 군상 속에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신행철 제주도감사위원장이 사의를 표명,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제 이후 눈에 띄게 늘어난 각종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식 감투싸움과 이 과정에서 초래된 파열음에 찌든 도민들에게 신 위원장의 결단은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제주도민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후임 감사위원장에 어떤 인물이 나설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리로 돌아갈 때 돼"

신 위원장은 최근 제주도출입기자들과 오찬간담회에서 “감사위원회 제도가 제자리를 찾아 정착됐다고 판단,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신 위원장은 “대학교수 시절, 보직을 맡아도 대개 2년 이었다”면서 “내 역할은 여기까지로, 이제는 나의 자리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재직 중 아쉬웠던 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법과 제도적으로 미흡한 점이 많은데, 이를 제대로 보완하지 못한 것이다”고 언급했다.

제주대 인문대학장과 한국사회학회 부회장을 지낸 신 위원장은 제주도지사의 내정으로 제주도의회의 인사 청문을 거쳐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3개월만인 2006년 10월 취임했었다.

제주도 감사위원장은 7명으로 구성된 감사위원을 지휘해 제주도와 제주도교육청의 행정 전반 또는 특정한 정책·사업·업무 및 예산 등에 대한 감사권한을 행사한다.

"최고수장도 성역 없이…"

제주특별자치도 출발과 함께 출범한 제주도감사위원회 초대 수장을 맡은 신 위원장은 취임 첫 포부로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고 수장도 성역 없는 감사를 하도록 하겠다”도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신 위원장 취임 후 감사위원회와 제주도는 ‘가깝지만은 않은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감사위원회 사무국 직원들 모두가 제주도지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학계의 오랜 생활에서 권력 눈치 보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신 위원장의 소신이 이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감사위원회는 그러나 출범 후 자의든 타의든 제주도의 일방적 독주를 기대만큼 견제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주도에 대한 첫 종합감사에서 나타났듯 특별자치도출범과 함께 집중된 제주도지사의 제왕적 권력이 파생시킨 각종 행정행위들에 대한 감사가 근본적인 문제에는 접근하지 못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독립 법적으로 보장돼야

신 위원장의 사의표명으로 그동안 수면아래 가라앉았던 제주도감사위원회의 역할강화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분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아예 감사위원회를 도의회 소속으로 둬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감사위원장은 제주도지사가 추천하면 청문회를 거쳐 도의회 동의로 임명된다.

이에따라 감사위원장 추천권이 제주도지사에 귀속되면서 나타나는 독립성 문제가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감사위원회 사무국 직원들의 ‘신분문제’는 더더욱 감사위원회의 제주도 종속을 심화시키고 있다.

감사위원회가 독립적인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함에 따라 승진 때 도청 직원들의 다면평가 등을 받아야 하는 직원들은 ‘도청 눈치’를 외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신 위원장도 출입기자들과의 사실상 마지막 공식 오찬에서 감사위원회에 대한 제도적 법적 미비점을 털어놨다.

후임 감사위원장의 인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하마평이 무성하다.

초대 위원장의 아름다운 퇴장에서 보여줬듯 제대로 된 ‘반듯한 인물’이 차기 위원장에 임명돼 감사위원회가 도민 모두로부터 신뢰받은 기관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정   흥   남
부국장/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