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감동의 드라마를 만끽하다

2008-08-27     제주타임스

제29회 베이징올림픽에서 웃고 울던 감동의 순간들이 폐막식과 함께 서서히 사라져갔다.

승자의 환희의 포효가 멎었고, 패자의 탄식과 좌절을 뒤로한 채 4년 뒤를 예약한 올림픽 깃발이 베이징 하늘에서 내려졌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구촌 젊은이들이 힘과 기를 겨루며 열정과 우정으로 하나가되어 평화의 한마당을 펼친 지 꼭 16일만이다.

세계6대륙 204개국 젊은이들이 958개의 메달을 놓고 스포츠 룰에 의한 선의의 경쟁을 벌였는데, 메달 색깔에 관계없이 각본 없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많이 연출해냈다.

혜성같이 트랙에 나타나 남자육상 단거리 100미터, 200미터, 400미터계주에서 모두 세계신기록을 갱신한 자마이카의 우사인 볼트 선수와, 수영에서 8관왕을 차지한 미국의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가 매스컴의 인기를 독점하였다.

 장대높이뛰기에서 24회째 경이적인 기록갱신을 하며 5미터5센티를 뛰어넘은 러시아의 미녀새 이신바예바도 있었지만, 세계를 들어 올린 장미란의 괴력은 단연 돋보였었다.

장미란은 여자역도 75키로이상급에서 인상과 용상경기를 합쳐 무려 다섯 차례나 세계신기록을 갱신하는 대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아시아선수라는 체력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수영에서 자유형400미터 금메달과 200미터 은메달을 거머쥔 박태환 선수와, 지금까지 누구도 해내지 못한 모든 경기 한판승 기록을 작성한 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 곱상하게 잘생긴 배드민턴의 이용대 등 모두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대회종반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준결승에서 숙적 일본을 맞아 국민타자 이승엽의 날린 역전투런홈런 한방은 일본열도를 침묵 속에 가라않게 만들었으며 한반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튿날 벌어진 아마야구 세계최강 쿠바와의 결승경기에서 시종일관 리드를 지켜가다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9회말 1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을 때, 우리국민들은 하나 같이 마음 졸이며 경기를 관전해야 했다.

쿠바 제일의 간판타자 구리엘이 방망이에 맞서 마무리투수로 나선 정대현이 실투하나면 승부가 바뀌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투 스트라이크 노볼, 볼카운트는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3구째 낮게 유인한 공은 ‘딱’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유격수 방향을 향해 빠른 속도로 굴러가고 있었다.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세계최고의 기량을 가진 유격수 박진만이 신기가 돋보이는 순간은 불과 4초에 지나지 않았다.

박진만이 낚아챈 공은 어느새 2루수를 통과하여 1루 베이스를 지키는 이승엽의 글러브 속에 들어가 있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대한민국야구사를 다시 쓰게 만든 금자탑을 달성한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보며 우리국민들은 승리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행복감에 젖었다.

믿음직한 투수 유현진이 잘 던지고 제주의 아들 강민호가 든든하게 안방을 지켜내던 9회말, 올라가야 할 심판이 손은 계속 올라가지 않았었다.

low ball?하고 간단한 항의에 퇴장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얻어낸 값진 승리였기 때문에 우리국민들은 환호의 탄성으로 주체하지 못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스포츠의 매력은 스릴과 환희가 있고 실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불굴의 투지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리경련을 일으켜 경기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끝가지 바벨을 잡았던 이배영과, 힘겹게 8강전에 올랐지만 기관지손상으로 더 이상 링 위에 오르기를 포기해야 했던 비운의 복서 백종섭, 유도경기도중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에서의 부상투혼으로 아쉽게 금메달을 놓친 왕기춘 등 참으로 대견스럽고 용감했다.

모두가 세계인의 가슴속에 대한민국 젊은이의 투지를 각인시키며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우생순’(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유명한 여자핸드볼 대표팀이 준결승에서 버저소리와 함께 그물로 빨려든 공하나 때문에 놓친 게임은 두고두고 아쉬웠지만, 항가리와의 불꽃 튀는 접전으로 역전 재역전을 반복하며 짜릿한 승리의 드라마를 엮어내는 모습에서 불굴의 투지와 열정의 결정체를 보았다.

금메달을 따내고도 타 종목의 인기에 가려져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은 태권도와 양궁 등에서 우리의 태극전사들은 평소에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당당하게 금메달13개, 은메달10개, 동메달8개 차지하며 세계7위라는 국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스포츠처럼만 해보자.

태극전사들이 보여준 투지와 열정을 대한민국 국민의 삶이 모델로 삼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인생도 스포츠처럼 열정을 담고 투지를 발휘하면 얼마든지 역전을 시킬 수 있다.

 2008년 8월은 태극전사와 함께 승리에 도취되어 기분 좋게 마무리 되어간다.   

강  선  종
총괄본부장/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