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영리병원 파문 1개월...

2008-08-17     정흥남


일을 하다보면 그 일을 왜 시작했는지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때가 있다.

일 자체가 목표가 돼 본래의 뜻을 오히려 훼손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예컨대 사람은 행복한 삶을 위해 돈을 벌려고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돈의 노예가 돼 불행해 지는 사례를 우리는 흔히 본다.

이런 상황을 ‘주객전도(主客顚倒)’라고 한다.

불과 1개월 전 제주사회는 말 그대로 섬 전체가 ‘영리병원’에 빠져있었다.

제주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영리병원이 도입돼야 한다는 제주도정의 일관된 밀어붙이기에 제주 전역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극심한 분열상을 보였다.

결국 찬반 여론조사에서 도민들의 ‘반대’에 밀려 좌절됐다.

△ 도민들 ‘신 성장 동력’에도 반대

김태환 지사는 지난 15일 ‘제 63주년 광복절 및 건국 60년 경축사’를 통해 여론조사를 통해 좌절된 영리병원을 중심축으로 하는 ‘의료산업’에 대해 재차 말문을 열었다.

김 지사는 “앞으로 제주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며“제주의 미래를 걸고 추진하는 교육․의료산업의 비전은 제주도민들을 보다 낳은 삶을 살게 하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영리병원 도입이 좌절된데 따른 자신의 심정을 재차 밝힌 것이다.

1개월 전인 지난달 17일 김 지사는 서귀포시청 제1회의실에서 열린 서귀포지역 읍면동장 및 이장․통장 회의에 직접 참석, 영리병원 도입에 다른 찬반여론조사결과를 지역별로 집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김 지사의 이 같은 발언은 공직사회에 영리병원 반대응답이 많게 나온 지역에 대해서는 해당 지역 담당 공무원들을 ‘손본다’는 일종의 압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과정에서 ‘관제 반상회’가 등장했고,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팽개친 채 연일 담당 마을을 찾아 영리병원 홍보에 매달려야해야 했다.

△ 계속되는 ‘제도개선’ 피로감 누적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제주도는 줄 곳 ‘제도개선’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특별자치도가 출범하자마자 2단계 제도개선 문제가 제기됐으며 요즘은 3단계 제도개선 논의가 한창이다.
그동안 수만은 중앙정부의 권한이 제주특별자치도로 넘어왔다.

그런데 상당수 도민들은 아직도 특별자치도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현상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제주도민들은 특별자치도가 출범한 뒤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삶의 질이 향상됐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결국 특별자치도라는 단어가 관료들만 사용하는 그런 구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허구한 날 흘러나오는 ‘제도개선’ 소리에도 피로가 누적, 감각이 무뎌졌다.

시․군폐지에 따른 풀뿌리 민주주의 훼손,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자치경찰 문제 등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파생된 각종 문제들을 외면한 ‘장밋빛 계획’만을 쫒는 현재의 정책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 사회구성원 신뢰가 大정책의 토대

흔히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논할 때 공자(孔子)가 그이 제자인 자공(子貢)과 나눴던 대화가 줄곧 인용된다.

하루는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인가를 묻자 공자는 “양식이 넉넉하고(足食) 병력이 넉넉하고(足兵) 백성이 신뢰하는 것(民信之矣)”이라고 답했다.

첫째는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요, 둘째는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 셋째는 믿음과 신뢰를 말한 것이다.

그러자 자공이 “부득이 셋 중 하나를 없애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빼야 하는가”를 묻자 “병(兵)을 없애라”고 했고, “부득이 또 하나를 없애야 한다면 무엇을 빼야 하는가”를 묻자 공자는 “식(食)을 없애라, 누구든지 죽게 되지만 백성에게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民無信不立)”라고 말했다고 한다.

믿음, 즉 신뢰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 지사는 광복절 경축사 말미에서 “광복절을 진정한 화합과 통합의 출발점으로 삼자”고 강조했다.

진정한 화합과 통합은 도정책임자의 주장에 앞서 사회구성원 모두의 신뢰라는 토대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

아무리 거창한 계획이이라도, 또 그 계획이 이 사회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신 성장 동력이라 하더라도 사회구성원인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이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제주도정은 직시해야 할 것 같다.

정  흥  남
부국장/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