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다시 보는 제주인물론
양창수 교수의 대법관 제청을 환영하면서
중앙 정가와 내각에 인물이 등용되기 어려운 ‘인사 변방’ 제주에 새로운 희망이 솟고 있다.
어제 제주 출신 석학 양창수 서울대 법대 교수(55)가 마침내 신임 대법관에 제청됐다.
사실상 지금까지 제주는 정부 요직의 인물 등용 부재 지역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주 출신 인사의 장관 발탁을 아예 외면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강금실 변호사를 정부 출범 첫 법무부 장관에 기용한 것이 고작이다.
제주인이 정치권과 정부에서 두드러지게 활약한 시기는 박정희 정권 때였다.
그는 현오봉 국회의원을 원내 총무 등 당 요직에 앉혔고, 박충훈 씨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등용했다.
또, 고재일 씨도 국세청장에 이어 건설부장관직을 지냈다.
이들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시기든 이런 요직에 기용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정치권의 주도적 인물과 정부 내의 장.차관급 부재 뿐아니라, 경제계에도 제주 출신 재력가가 없다.
특히 대우그룹을 창업한 김우중 씨의 몰락은 제주도민들에게 크나 큰 손실이다.
만약 그를 전폭 지원할 배후 정치 세력이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그는 IMF의 위기를 극복하고, 그룹의 총수 자리도 박탈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제주지역 인사의 중앙 무대 진출은 순탄치 않을 것같다.
정치권과 내각 등의 주류 세력이 되려면 유권자가 많은 지역 출신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설사, 지역안배를 한다고 해도 제주는 항상 열외 지역에 포함돼 왔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외무부 장관 또는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비서관에 유력하게 거론됐던 제주 출신 인사의 막바지 탈락 역시 도세가 가장 열세한 지역 출신의 설움이다.
그러나 상황은 반전되고 있다.
또다시 한 명의 제주인이 이런 비애를 감수해야 할지 모를 처지에서 벗어났다.
대법관 후보 4명에 포함된 양 교수가 최종 1명 후보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청됐다.
그는 국회 청문회에 이은 임명 동의를 거쳐 새 대법관직을 수행하게 된다.
솔직히 그의 최종 대법관 후보 제청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우선 지역세에서 영.호남 등 다른 지역에 밀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청자인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역세를 배제해 그를 선택했다.
지금까지 모두 네번이나 대법관 후보에 오른 그는 특히 작년 12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 석학 15명 중 1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과거 판사로서, 현직 민법 분야의 대표적인 교수로서의 그의 자질과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에도 양 교수가 신임 대법관 후보로 제청되지 않을 경우 제청자인 이 대법원장 역시 어쩔 수 없는 지역 편향주의적인 인사를 했다는 지적을 면치 못할 뻔했다.
청와대든, 대법원이든 이처럼 인물 위주의 공정한 인사를 해야 한다.
지연.학연 또는 개인적 친분에 의한 인사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불공정 인사가 없어지는 날을 무작정 지켜볼 수 만도 없는 일이다.
이제 우리도 양 교수와 같은 인물들을 길러내야 한다.
정부 각 부처에 근무하는 미래 국정에 주역이 될 만한 인재들을 찾아 내 나라를 위해 큰 역할을 하는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회 원희룡 의원과 강금실 전 장관도 정치권이 주목하는 제주가 낳은 인물이다.
원 의원은 아직은 당내 비주류에 속하지만, 세력 규합 여하에 따라 충분히 핵심 인물로 부상할 수 있는 인물이다.
강 전 장관도 지난 총선때 전국구 1번을 버리고 희생하면서 꺼져가는 민주당에 불씨를 지핀 인물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런 그녀가 당의 요직에 앉지 않은 것은 유감천만이다.
그녀는 영국병을 치유한 철의 여인인 대처와 같은 한국의 철의 여인감이 될 만한 인물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떻든, 양 교수의 대법관 등용으로 제주는 여전히 변방이 아님이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이에 관계없이 제주인의 자존을 지키고, 다른 지방보다 더 걸출한 인물들을 길러내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