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희망 아카데미-유레카’
‘희망 아카데미-유레카’는 제주시립희망원이 실시하고 있는 부랑인과 노숙인의 자기정체성 확립과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이다. 연간사업으로 실시하고 있는 이 사업은 오랜 노숙생활로 자활의지가 부족하고 반사회적 행동양식을 가진 부랑아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화 ? 교육적 프로그램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역사회의 반응도 뜨겁다.
그렇다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 수업’은 과연 가능하며, 효과가 있을까? 필자는 그 프로그램 강사로 참여하면서, 인문학이 빈곤층들에게 성찰적 사고 능력을 길러줄 것인지, 그리고 인문학 강좌를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도 민주주의 사회에 온정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인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나름대로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 수업을 ‘클레멘트 코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코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평함에 대한 남다른 의지를 가지고 민주주의에 헌신할 수 있는,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강의를 위하여 그곳으로 출발할 때마다, 한국의 전통철학과의 접목이 가능한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여기서 유레카(Eureka)란 미국시인 E.A.포가 1848년에 우주를 초자연적으로 해설한 강의 집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리스어로 <내가 발견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는 말한다. “가난한 인간들도 인간이며, 그들의 인간성을 가장 적절하게 존중하는 방식은 공적인 삶의 영역에서 시민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바로 그들에게 인간 모두의 가치를 인정하고, 인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깊은 이해를 도출할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는 또 고위 정책결정자들에게 일갈한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곳을 방문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생각이 반영된 정책을 만들어서 집행하라.” 바로 이것이 내가 클레멘트 코스에 관심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정책결정자들은 묵묵부답이다. 제주시인 경우 기초생활보호대상자는 1만5천5백여 명으로, 그 중 시설 수급자는 1천3백5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리고 시설에 몸을 위탁하고 있는 부랑인과 노숙인은 작년 6월 현재 88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을 위하여 알코올상단센터와 노인상단센터도 운영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사회복귀 훈련과 재활교육에 대한 서비스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며, 특히 부랑 ? 노숙인을 위한 문화 ? 교육 프로그램은 전무한 상태이다. 한마디로 그들을 위한 자신의 삶의 원천을 추구하는 인문학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군사정권시절에 소외된 자와 더불어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도시빈민운동에 동참한 적이 있다. 진보적인 기독교계가 펼치는 ‘더불어 사는 삶’의 일환으로 소위 산업선교라 일컬어지는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 활동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서울 변두리는 개발에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군사정권의 눈을 피하여, 아니 군사정권과 정면 대응하면서 70년대 말에서 80년대를 통과하였고, 당국의 탄압을 체험하면서 가난하고 무력하게 사는 사람들의 희망이 무엇인가도 고민하였다.
이제 다시 가다듬으며 자문해 본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인문학 프로그램이 과연 사회적 약자들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클레멘트의 기적’은 우리 모두의 실천 현장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 지역사회에서 희망의 인문학이 피어날 수 있도록 모두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며, 제주시립희망원이 추진하는 이번 프로그램이 지역사회를 일깨우고 시민들이 관심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