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원로와 지역사회

2008-07-06     김광호

원로(元老). 듣기만 해도 정감이 넘치는 말이다.

단 두 글자에 존경과 완숙의 경지가 느껴진다.

일생을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기 영역에 충실하면서 사회적으로 덕을 쌓아 존경을 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필자에게 원로는 더 큰 존재로 다가선다.

으레 신년호의 신춘대담 또는 창간 특집에는 원로와의 대담 지면이 마련됐다. 이 때 필자가 만난 원로도 여러 명이나 된다.

주로 정치계와 학계, 종교계, 법조계, 문화계의 원로들을 만났다.

우선은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한 그들의 고견을 듣고 전달하는 역할에 치중했지만, 지면에는 다 싣지 못한 그들의 인생관과 사회발전론에 깊은 감명을 받는 등 개인적인 소득이 많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사회가 발전하려면 법과 도덕이 확립돼야 하고, 인간성이 회복돼야 한다고 했다.

또, 사회지도층을 포함한 국가의 원로와 지역사회 원로들이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떳떳이 할 말을 하고, 할 일을 찾아 나서야 된다고 했다.

나라와 지역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있는데도 달콤한 말만 하는 원로는 진정한 원로가 아니다.

원로는 있지만, 원로다운 원로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반드시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원로들이 많지 않다.

단 말보다는 쓴 말을 많이 하는 원로가 많아야 할 텐데, 점점 그런 원로는 찾아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원로들의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을 줄 안다.

 불러주는 사람들이 없는데, 왜 먼저 나서나? 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불의에 의연히 할 말을 다하는 원로보다는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집착한 원로가 많아지고 있다.

국가나 지역사회가 그런 원로를 원로로 대접하려고 하지 않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제주사회의 원로는 어떤가. 아니, 원로는 있었는가. 있었다면 지금까지 무슨 일을 얼마나 해 왔을까.

유감스럽게도 원로로 생각되는 사람은 많지만, 지역사회를 위한 원로의 역할은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같다.

가까이는 해군기지 문제로 도민사회의 갈등이 심화됐을 때에도 원로들의 목소리는 없었고, 시.군을 폐지하는 행정구조 개편 논란이 한창일 때에도 원로들의 이렇다, 저렇다는 의견 제시가 없었다.

딱 한 사람 있었다면, 조문부 전 제주대학교 총장만이 풀뿌리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아마도 행정학을 전공한 학자적 양심의 소리였을 것이다.

지역사회에 대한 제주지역 원로들의 무반응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행정구조 개편으로 도지사의 권한만 비대해졌을 뿐, 도정은 도민들에게 더 나은 복지도, 더 좋은 제주의 미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커진 것은 도지사의 권한과 독주 뿐이다.

이럴때 일 수록 원로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도정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려내고, 나아 갈 방향을 제대로 따끔하게 제시해 주는 일을 해야 한다.

마침 제주지역 원로들이 뇌물과 관련해 법정 구속된 신구범 전 제주지사의 구명운동에 나섰다.

 ‘신 전 지사 사면 청원을 위한 도민 모임’을 만든 원로들은 며칠 전 회견을 통해 “무려 7만4500명의 도민 서명을 얻어내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과연 원로들이 할 일인가에 대한 비판은 존재한다.

그것도 지역사회 차원의 아닌, 한 개인(물론 도지사를 지낸 공인이면서 지역 사업가이지만)의 형사 처벌과 관련한 일에 느닷없이 원로들이 나선 것이다.

원로 구성원에 대해서도 전혀 말들이 없지는 않다.

그만큼 공인 또는 사인(私人)으로 살아 오면서 얼마나 이웃을 배려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해 왔느냐는 원로의 기준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평소 원로로 인정받을 만큼 공.사적으로 도덕적 흠결이 없느냐는 점도 따져 볼 일이다.

어떻든 이에 대한 평가는 미뤄 두고, 모처럼 원로의 힘을 잘 보여 준 사례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울러 그 뜻이 성사되길 바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기회에 제주지역 사회의 바른 길잡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도정의 실정과 이로 인한 주민과의 갈등, 전국 하위권으로 추락한 제주경제를 살려내는 일 등 모두 원로의 역할이 요구되는 것들이다.

신 전 지사 구명을 위한 원로들의 활동이 사라진 시.군과 행정시 위에 군림하는 도정을 견제하고, 도민사회의 갈등을 풀어 주는 중재자의 역할까지 하는 방향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아울러 원로의 구성원이 공직생활 또는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사회적 기여도가 많은 덕망 높은 인물들이어야 한다는 점도 명심할 일이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