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서복문화의 관광상품화

2004-09-21     제주타임스

 서복은 중국의 진나라 사람으로 지금으로부터 2,200여 년 전 삼신산에서 불로초를 캐어 진시황에게 바치기 위하여 동남동녀 3,000여 명을 거느리고 발해(渤海) 속에 있다고 믿은 영주산, 방장산, 봉래산 등 삼신산을 찾아 나섰는데, 중국의 산동반도→한국 서해안→제주도→일본 규슈지방을 여행한 다음 일본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복은 영주산(한라산)에 불로초를 캐러 왔다가 불로초는 캐지 못하고 신선의 열매로 알려진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시로미 열매를 채취한 후 서귀포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이 때 서복은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직접 바다로 떨어지는 정방폭포의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한 나머지 절벽에 자신이 방문했음을 알리기 위하여 ‘서불과지(차)’라는 네 글자를 새겼으며, 서쪽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남긴 것이 유래가 되어 ‘서귀포’라는 지명이 탄생되었다는 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서귀포시는 이러한 서복과 관련된 문화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하여 45억 7,500만원을 투입하여 2003년 9월에 서복전시관을 완공한 바 있는데, 2006년까지 62억 9,700만원을 추가로 투입하여 전시관 서쪽의 공원부지 2,340평을 새로 매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전시관에는 불로초 탐사와 진시황에 대한 전시물을 진열한 서복공간, 서귀포시의 연혁과 문화유적지 및 관광문화 홍보물을 전시한 서귀포시 공간 등이 있으며, ‘서귀포와 서복’이라는 10분 분량의 애니메이션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 관람이 시작된 2004년 1월부터 8월 31일까지의 관광객 유치실적은 고작 5,179명(제주도민 9,685명 무료 관람 미 포함)에 지나지 않고 있으며, 이 중에서 중화권 관광객은 351명으로 하루에 1.4명씩 이 전시관을 찾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필자는 서복전시관이 문화관광상품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연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이 전시관은 관광객의 욕구를 자극함으로써 관광객이 이 곳을 방문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상품 자체가 차별적이고 신비적인 요소를 갖고 있어야 한다.
 즉, 서복일행이 오랜 기간 동안 선상생활을 하였던 모습을 재현시키고 장수 및 바다와 관련된 다양한 소재를 찾아서 전시하는 바다박물관의 역할을 할 때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둘째는 서복전시관은 정방폭포 바위에 쓰여져 있었다고 하는 ‘서불과지(차)’라는 네 글자가 이 전시관을 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 전시관을 정방폭포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일체적인 것으로 보고 정방폭포와 이 전시관을 매끄럽게 연결시키는 동선처리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중화권 관광객 대부분이 여행사를 통하여 내도하고 있음므로 중화권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에 대한 집중적인 촉진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제주도를 방문하는 중화권 관광객들이 이 곳을 방문하도록 하여야 한다.
 넷째는 이 전시관을 불로초와 장수에 관한 상품의 판매장소로 활용함으로써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도록 하여야 한다.

 서복이 불로초를 찾아서 제주도에 왔던 사실을 토대로 하여 다양한 장수관련 식품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판매하고, 앞으로 확보되는 2,300여 평의 토지에는 대규모의 시로미 광장을 만드는 것도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매력을 주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21세기는 문화관광의 시대라고 다들 말하고 있다. 따라서 각 지역은 지역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에 관광객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줄 수 있는 연출기법을 도입하여 관광자원화를 시도하고 있는 만큼 서복전시관도 관광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연출기법을 도입할 때 서복문화의 관광상품화는 성공할 것이다.

고  승  익(제주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