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행정계층구조 개편 '혁신안'
여론조사로 결정 안된다
도민 대다수가 모르는 행정계층구조 혁신안을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지으려는 제주도의 방침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별자치도 추진과 함께 제주도의 가장 큰 현안은 행정계층구조 문제로 집약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은 관계, 학계 등 전문그룹에서는 활발히 논의되고 다뤄지는 분야지만 일반 도민들에게는 생소하면서도 관심 밖의 일로 받아들여지는 실정이다.
제주도는 종전 특별자치도와 같이 추진하던 행정계층구조 문제를 일단 분리했다.
이는 도에서 용역을 준 제주발전연구원의 결과물인 기존 시. 군 개념을 없애고 시장 . 군수를 도지사가 임명하는 '혁신안'을 놓고 기초 자치단체장들이 반발하고 나서는 등 특별자치도 추진 일정에도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김태환지사의 판단 때문이다.
도청내에 설치돼 있는 행정개혁위원회(위원장 조문부)에서 행정계층문제를 전담키로 하고 발전연구원 등의 5가지 혁신안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 한가지 안으로 집약한다는 것이 제주도의 복안이다.
반면 여론조사 대상이 전체 도민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일부 오피니언 그룹을 제외하면 행정계층구조와 관련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여론조사 후 도민설명회를 개최한다는 도 정책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이다.
우선 도민설명회 개최 및 홍보활동 강화로 행정계층구조의 의미를 비롯 특별자치도 추진과 연관성, 점진안 및 혁신안의 장단점 등을 자세히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도민들은 "막상 여론조사 대상에 선정된다해도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탓에 자신의 의사조차 제대로 나타낼 수 없는 지경"이라며 도의 '나 홀로 정책'을 나무랐다.
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제주도의 장래를 결정짓는 문제에 대해 도민 관심이 부족할 리가 있느냐"면서 "5가지 혁신안을 1가지로 좁히고 현행 계층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효율성을 가미한 점진안 등 두 가지를 놓고 도민투표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행정계층구조 문제는 제주도의 장래와 직결된다.
시. 군 등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할 경우 우선 도민들의 겉모습부터 크게 달라지는 탓이다.
또한 현행 시.군 구획선을 유지하면서 시장. 군수의 도지사 임명제로 간다해도 지금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될 전망이다.
기초자치단체장이나 대다수 시.군 의원들의 바램대로 현행 체계대로 놔두는 '점진안'도 행정력 및 예산 낭비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효율성'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놓고 어디에 더 무게중심을 두느냐 하는 문제로 도는 이를 여론조사와 도민투표 등을 통해 도민들에게 묻는 다는 것이다.
20일 도 관계자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라면 행정이 정하고 주민들에게는 따라 오도록 하면 되지만 이제는 다르다"면서 "도민의견을 도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명분을 세웠다.
하지만 이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도민은 드물다.
도의 방침이 크게 잘못된 것은 없지만 반대여론이라는 소나기를 피해 가자는 '안전운행'에 역점을 두고 업무를 추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안으로 결정되더라도 그것은 '도민의 뜻'이었지 '제주도가 밀어 부친 것은 아니'라는 면피용 성격이 짙다.
▲결정에 나서기 싫은 제주도
제주도는 특히 행정계층구조 문제에 대해 버거운 표정이다.
행정의 효율성 등을 위해 시.군 등 기초자치개념을 1광역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혁신안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훼손'이라며 현행 행정체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진안 사이에서 장고를 거듭하는 모습이다.
도의회가 주최한 행정 전문가 연찬회에서 주제 발표자들은 대부분 현행 제주도의 행정계층구조는 비합리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구 55만명 지역을 4개 시.군으로 나누다 보니 업무의 중복성 등으로 인해 비용낭비가 특히 눈에 띤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을 제주 경제에 재투자할 경우 도민소득 확대재생산 및 고용창출 등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의견은 "현행 행정체계가 바람직하다"며 제주발전연구원의 '혁신론'에 발끈하고 있다.
여기에 다수 시.군 및 도의원들도 가세하면서 제주도의 선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선거직인 제주도지사가 눈치를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특별자치도에서 이 사안을 빼냈고 행정개혁위원회에 일체의 사항을 맡겼다.
공을 넘겨받은 개혁위는 혁신안을 1가지로 하고 현행안과 도민투표로 결정짓는다는 방안을 세워놓고 있다.
혁신안 결정은 여론조사에서, 최종 결정은 도민투표로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잘되든 잘못되든 도의 책임은 '도민 의사를 존중한 과오'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제주도의 움직임과 관련, 도민들은 "제주도의 장래를 결정 짓는 중차대한 문제를 놓고 책임 있는 행정기관에서 가장 옳다고 여기는 안조차 스스로 제기하지 않는 것은 지나친 보신주의"라면서 "여론조사와 도민투표에서 정해진 사항이 최적안이라는 보장은 어디 있느냐"며 반대여론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도 정책을 꼬집었다.
▲제주도민 행정계층구조 얼마나 이해하나
도에서 실시하고자 하는 여론조사도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우선 여론조사는 조사대상이 사안을 이해하는 경우에만 효과를 거두게 된다.
제주도는 도민 대부분이 행정계층구조문제를 알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실상은 거리가 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전화 여론조사를 할 경우 5가지 혁신안 중 1가지를 고르라면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도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하는 회의에 부딪치고 있다.
여론 조사 후로 예정돼 있는 도민설명회를 앞당겨야한다는 지적도 이 탓이다.
또한 도민 홍보활동도 적극 강화, 행정계층구조 문제를 널리 알리고 관심을 집중시켜야 제주도에 가장 알맞는 최적안이 도출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행 체계 그대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분석.
행정계층구조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당시 제주도는 발빠르게 혁신안을 관심의 대상에 올렸다.
'여론 떠 보기용'이라는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예상대로 시장. 군수 등 자치단체장들의 반발과 함께 일부 지방의원들도 혁신안을 공격했다.
제주도는 이에 점진안과 두 안을 도민투표로 결정한다는 잠정일정을 마련했지만 '올해 내에 안 할 수도 있다'면서 여전히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고 있다.
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여론조사는 도민의견 수렴에 최선을 다했다는 장치로 구실을 할 것이고 이를 자치단체가 선호하는 점진안과 경쟁시키면 결과는 명백하다"며 "도에서도 혁신안으로 가야 한다는 뚜렷한 소신이 없는 만큼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 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