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란 같은 돈
토란은 뿌리와 줄기를 식용으로 하는 아열대성 식물이다. 그 중에 알토란은 너저분한 털을 다듬어 깨끗하게 손질한 토란을 말한다. 금방 식용으로도 가능하고 누구에게나 선물을 해도 손색이 없는 게 알토란이다. 우리는 돈과 관계된 말을 할 때 알토란같다는 말을 가끔 쓴다. 같은 말이지만 알토란같은 돈의 개념은 천차만별이다. 가진 자와 못가진자가 확연히 구별되고 금액이 많고 적음이 노정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알토란같은 돈이라는 말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드린다.
얼마 전 대통령을 지낸 분의 부인이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그 돈은 내가 알토란같이 키운 돈”이라는 말을 했다고 신문에 대서특필(?)한 걸 보았다. ‘일백삼십억’ 이정도면 알토란같은 돈이라고 할만도 한 금액이다. 알토란같이 키운 돈임을 주장하는 그가 처음으로 돈을 만지기 시작했을 때는 육군의 초급장교 부인이었을 게다.
그 후 남편이 대령이 되고, 장군이 되고, 대통령까지 승승장구 올라가는 사이에 그 부인은 알토란같이 돈을 키웠던 것이다. 당초에 얼마만한 돈으로 시작하여 ‘일백삼십억’까지 키웠는지는 알바 없으나 그 돈이 ‘일백삼십억’에 이르는 사이에 혹여 서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없었는지, 문득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된다.
그 것도 알토란같이 키운 돈, 그 돈을 키우는 과정에 추호도 남의 입에 오르내릴 일이 없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는 돈 키우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일백삼십억’은 보통사람의 재간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이렇게 우리가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그 분의 아들이 ‘일백칠십억’이나 되는 돈 때문에 재판을 받게 되었다.
법정에서 그 아들은 ‘일백칠십억’은 자신의 결혼 축의금으로 들어온 ‘이십억’을 종자돈으로 하여 외할아버지가 알토란같이 키워준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십억’이 ‘일백칠십억’이 되기까지 몇 년이나 걸렸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집안은 돈 키우는 대는 이골이 나 있는 것만은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 어머니와 그 아들, 어머니가 알토란같이 키운 ‘일백삼십억’, 아들이 ‘이십억’의 종자돈으로 키운 ‘일백칠십억’,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돈을 불릴 수도 있는데 우리는 왜, 푼돈에 목매어 아등바등해야 하는 것일까. 입맛이 씁쓸하다.
어느 날 평생을 경제원론만을 강의해 온 노(老)교수에게 학생들이 몰려갔다. 알토란 같이 키우면 ‘일백삼십억’이 되고 결혼 축의금 ‘이십억’이 몇 년 사이에 ‘일백칠십억’이 되는 길도 있는데 교수님은 한번도 알토란같이 돈을 키우는 방법에 대하여는 강의를 한 적이 없으니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십억’이 ‘일백칠십억’ 이 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리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교수는 입을 다물었다. 교수가 아는 경제이론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빛바랜 경제원론을 덮고 먼 산을 바라보는 노 교수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한낱 풍자이긴 하지만 돈에 대한 말들이 너무 쉽게 가진 자들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이런 말을 들으며 서민들의 가슴이 작아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이제 권력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돈 이야기는 식상할 때가 되었다. 다시는 이런 말을 듣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어디서 ‘억’ 소리가 튀어나올지 아리송하다.
수필가 조 정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