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국민적 자신감
얼마 전 미국을 방문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몇몇 특정 모임에서 현지어로 직접 연설을 하는 재치를 보여주었다.
외국어 전문가에 의하면 일부 발음이 불안하기는 하였으나 내용의 전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이는 영어에 대한 그 특유의 자신감에서 비롯되었다.
자신감만 있으면 부정확한 발음이나 억양은 오히려 언어적 권위가 되어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감은 기억력에도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억력의 천재인 이스라엘의 에란 카츠는 기억력의 향상과 회복에 자신감이 두루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자신감은 개인의 일상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자신감(自信感)은 자기의 능력이나 가치를 확신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인간에 있어 자신을 믿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을 터이다.
이런 자신감을 개인이 아닌, 국민 전체가 집단적으로 갖는다면 과연 얼마큼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대단한 위력을 나타내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어느 날 수십 명의 각기 다른 인종(人種)들이 비행기로 영하 15도의 시베리아 동토(凍土)에 내렸다.
이들은 불과 몇 시간전만해도 섭씨 40도를 웃도는 중동의 사막에서 노동을 하던 일꾼들이었다.
이곳 얼음바닥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삽을 들고 일을 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서양인들은 적응을 해야 한다며, 일주일이나 천막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떤 종족이 가장 체력이 좋은가를 시험한 사례이다.
우리는 강인한 체력뿐만 아니라, 우수한 두뇌와 재능을 지니고 있는 자신만만한 백성들이다.
‘세계최초’의 다양한 발명품과 창작물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세계기능올림픽의 우승은 대부분 우리 청소년들의 몫이다.
1234년 고려는 세계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사용하였다.
인쇄술의 선구자라는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도 2백년이나 먼저다. 화약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조하였다.
1370년에서 1377년 사이, 고려 최무선(崔茂宣)은 화약을 만드는데 성공하여 당시 빈발하던 왜구의 침입에 철퇴를 가할 수 있었다.
1380년에는 진포 앞바다에 출몰한 왜선 5백여 척을 화포로 공격하여 혁혁한 전과(戰果)를 올렸다.
후에 그들의 소굴인 대마도까지 원정, 집중포화로 3백여 척의 적선을 통쾌하게 불태워버리기도 하였다.
농업국가인 조선은 강수량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세종대왕 시절인 1441년, 강우(降雨)를 측정하는 측우기(測雨器)를 만들어 보급한 것은 우리 천문기상 연구사의 압권이었다.
이와 함께 한강과 청계천에는 수위를 재는 수표(水標)를 세웠다.
1443년 드디어 우리 글 ‘한글’이 창제된다. 한글이야말로 우리가 아무리 자랑해도 지나침이 없는 세계최고의 문자가 아닌가.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 이 7년 전쟁에서 왜군을 당당히 물리치고 조국을 방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순신장군의 거북선. 거북선 역시 세계최초의 장갑선임은 주지(周知)하는 바다. 경제대국이라며 우쭐대는 일본인들도 이에 관한 한, 우리들에게 머리를 숙인다.
그들에게는 세계최초라는 것은 거의 없고, 주로 모조품을 생산해내는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수세기 동안 역사일기를 써온 민족이다. 조선왕조실록이 바로 그것이다.
생각해 보라. 5백여 년간 한 결 같이 사실(史實)을 기록해온 국가나 겨레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결코 무력한 나라, 연약한 국민이 아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문명국이요, 빼어난 문화민족 · 과학국민이다. 굴욕외교니, 졸속협상이니 하는 비하성(卑下性) 발언들이 무성한 요즘이다.
자기 스스로를 믿고 존중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자신감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적 자신감을 발양(發揚)하여 난국을 슬기롭게 풀어나가야 한다.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