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4ㆍ3', 그리고 시인들
“어머니의 어머니는 / 질기고 질긴 한숨으로 / 찔레를 키우셨다. // 징요서 풀린 지아비 / 4ㆍ3 나던 무자년에 죽고, // 아들은 산으로 올라 / 기축년에 죽고, // 딸마저 그해 겨울 / 눈 위 핏자욱으로 갔다. // 홀몸가시로 칭칭 묶고 / 속돌 연자방아 피멍으로 돌리시다. / 팍, 터지며 / 막 피어난 찔레꽃.” 김성주 시인의 ‘찔레꽃?1-외할머니 영전에서’의 전문이다. 그의 절규는 항상 서정과 역사의 접목에서 출발한다.
서정시의 사유는 본질적으로 ‘나-너(ich-du)’의 관계를 강조한다고 했다.
그 ‘관계’에 대한 인식이 바로 ‘서정’이다. 그는 ‘너 바로 타자’를 한국사의 비극인 4?에서, 그것도 개인사에서 끌어오지만 그것은 바로 제주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로 바꾼다.
저 무자년과 기축년에 남편과 아들을 잃고, 그 이듬해에 딸마저 잃은 외할머니의 일생을 차용하면서, 김성주는 역사와 서정의 접점을 발견한다.
“무슨 원수진 일 있나 / 불끈 일어나 눈 부릅뜬 아침 / 바다는 이미 파랗게 질려있다 /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 욕이 마려운 사람들 / 멱살 잡힌 파도가 끌려온다 / 수마포 모래밭 / 익숙해진 버릇으로 / 혼백진 잠녀를 끌고 와 부서진다 / 숨비기꽃 끌고 와 마음껏 어질러 놓는다.” 강중훈 시인의 ‘수마포에서’ 전문이다. 수마포는 당시 민간인이 학살당한 장소이다.
그 역시 사태 때 가족의 생명을 내놓았다.
지금 수마포 앞에 서서 시대의 오류를 실감하면서, 자신의 뼈를 깎아 자신의 응어리진 피를 풀어, 심상에 음각된 아픔을 혈서로 쓰면서, 지금 우리 가슴을 울리는 시를 쓸 수밖에 없다.
“두 분은 떠나셨지만 /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 당신은 뒷골목 곳곳에 계시네요 / 소금 섞인 물은 이미 물이 아니듯 / 이념이 섞인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어서 / 서러운 당신은 여전히 살아 계시네요.” 김경홍 시인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중에서 뽑았다.
그는 아픈 고향을 멀리하고 지금 경북 구미에 살고 있다. 1948년 3월 야학선생인 아버지는 20세의 나이로 토벌대에 쫓겨 입산한다. 1956년 8년의 피신 끝에 자수한 아버지는 지역을 돌며 강제로 반공강연을 한다.
종종 기관으로 끌려간 아버지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훗날 아들은 시인이 되어 ‘인동꽃 반지’를 아버지 영전에 바친다.
시인 김명식도 마찬가지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진 한을 일관되게 투쟁의 메시지로 시에 담고 있으며, 반미 민족해방투쟁으로서의 당시 의미를 강력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M1을 주고 드디어 / 북침을 하라는 명령을 내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 기억하세요 / 형제들이여 / 총으로 제주섬의 아침을 / 붉게 물들인 / 미국의 양심을 기억하세요”와 같은 대목에서 그는 급진적인 자세를 보이며 역사를 향하여 정의와 평화를 심을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4ㆍ3자료집 「제주민중항쟁」을 1988년에 발간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제주도 민중은 일어서고 있다.
슬며시 슬며시, 상처 난 자기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4ㆍ3에 물든 피를 씻어내며 예리한 칼벽을 넘어 해방의 날을 예비하고 있다”고 김명식은 그 책의 서문에 쓰고 있다.
그 외에도 제주출신의 많은 시인들이 4ㆍ3을 소재로 훌륭한 작품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필자도 시집 「섬곶 떠난 내 아비」와 「함덕리」를, 그리고 소설집「어허렁 달구」와「본풀이」를 통하여 고향땅에 응어리진 역사적 상처를 보듬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 목 내놓고 고동을 힘껏 부십시오 / 그 긴 역사를 향하여 고독의 세월을 찾으십시오 / 어머니의 상처가 아물기에는 아직 멀었으며 / 더 오랜 세월을 저 산기슭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 그러나 새벽은 물 한 모금입니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