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특별자치’ 2년…그리고 山南

2008-05-18     정흥남


몇 년 전만해도 북한하면 떠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섬뜩한 내용들의 현수막이었다.

현수막은 이처럼 특정 지역을 상징하는 것이 될 수 도 있는 동시에 체제를 선전하는 도구로는 더없이 좋은 홍보매체다.

이로 인해 선거 때 마다 다양한 현수막들이 동원되고 현수막을 걸기위해 소위 ‘목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늘 이어진다.

그런데 이 같은 현수막이 최근 제주지역 도로는 물론 행정의 사무실까지 파고들고 있다.

제주도를 비롯한 서귀포시 등 행정시는 물론 제주도산하기관 사무실에는 하나같이 각종 구호들이 적힌 현수막들로 가득 차 있다.

중앙정부 사무실은 전형적인 ‘업무를 하는 사무실’인 반면 유독 특별자치도 사무실만은 ‘보험회사 같은 사무실’모습이다.

단번에 보아도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각종 다짐을 표현한 내용들과 특별자치도정을 홍보하는 것 일색이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현수막을 위정자들이 체제선전을 위해 도입한 ‘우민화(愚民化) 도구’의 하나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는 현수막이 쌍방의 의사통로를 토대로 하지 않은 특정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파하는 홍보매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된 것 없는 ‘특별’

2006년 7월 1일 말 그대로 ‘역사적’인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했다.

그래서 내일 모레이면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주년 행사가 곳곳에서 성대하게 열릴 것으로 보인다.

제주특별자치 출범 때만 하더라도 제주도민들은 말 그대로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특별도’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나 하는 의구심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의 ‘선결조건’이 됐던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 폐지에 대한 회의감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시.군 폐지라는 ‘행정계층구조 혁신안’에 반대표를 더 던졌으나 투표수가 많은 산북에 밀려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산남지역 주민들의 상실감은 더 깊어지고 있다.

특별자치도 출범 후 계속되는 인구이탈과 이로 인한 제주시 집중은 특별자치도정이 예전의 도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지고 있다.

국책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혁신신도시와 영어타운 사업의 경우 역시 새 정부 들어 ‘추진동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다 특별자치도 차원에서 추진되는 산남발전을 위한 ‘주목할 만한 시책’도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이래서 서귀포시민들 사이엔 특별자치도에 대한 좌절감이 확산되면서 ‘되는 것 없는 특별도’라는 푸념이 일고 있다.

자율ㆍ창의 실종

“하귤(夏橘) 500그루를 심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일조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그거, 김 과장네 마당에나 심어”

“5000그루도 5만 그루도 아니라, 겨우 500그루로 뭘 하겠다는 거야”

얼마 전 서귀포시 담당(6급)이상 공무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서귀포시 확대간부회 공개석상에서 오간 보고와 질책의 한 대목이다.

회의는 이 같은 일방적 질책과 지시 위주로 2시간 30분간 넘게 이어졌다.

공무원들의 자율과 창의가 들어설 여유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빚어지고 있는 최대의 병폐는 이처럼 일방적 지시와 복종으로 비롯되는 획일성이다.

다양한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창의성이 위축되다보니 자연히 공직사회는 복지부동 할 수밖에 없다.

나서다 욕 듣느니 차라리 시키는 일, 규정에 있는 일만 하겠다는 심리가 자연스럽게 공직사회를 망치고 있다.

특별자치도 출범 2주년이 되는 오는 7월 1일을 앞두고 곳곳에서 낯부끄러운 ‘특별자치 어천가’가 나올 것이 확실시 된다.

새 정부 출범 후 제주에서 이어지고 있는 일방적 ‘MB 따라하기’와 산남지역 자율성 등이 배제된 도정의 일방통행은 제주사회의 발전을 더디게 할 수 밖에 없다.

자율과 다양성이 전제된 가장 제주다운 것이 제주가 살아남을 경쟁력이고, 제주의 승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부정한다면...

2년 뒤 치러지는 지방선거 때 ‘잃어버린 (특별자치)4년 심판’이라는 말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어 보인다.

정   흥   남
편집부국장/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