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소중함 일깨운 어린이 모의재판
재판부, "운동장 청소 3일" 선고

지법 303호 법정, '도시락 절도 사건' 열띤 공방

2008-05-14     김광호

“피고인에게 운동장 청소 3일을 선고합니다”.

어린이 모의재판 재판장의 준엄한 판결과 판결에 귀 기울이는 어린이 방청객들의 표정 모두 진지했다.

제주지법은 14일 오전 11시 303호 법정에서 서귀포시 예래초등학교 5.6학년 어린이 56명을 초청, 지법 사상 첫 어린이 모의재판의 기회를 마련했다.

이날 아침 법원버스와 학교버스로 지법에 도착한 예래교 어린이들은 실제 재판이 열리는 법정을 견학한 뒤, 모의재판에 이어 법관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모의재판은 재판장인 강현주 어린이(6년)의 형사재판(도시락 절도사건) 시작 선언과 함께 피고인에 대한 인정신문(이름 등 확인), 검사 기소 요지 진술, 묵비권의 고지, 검사신문, 증인신청 및 채택, 증인 2명 신문, 검사 의견 진술, 변호사 변론, 피고인 최후 진술, 판결 선고 등 실제 재판처럼 진행됐다.

검사 역할을 맡은 임현우 어린이(6년)는 “피고인이 주인에게 말을 하지 않고 도시락을 먹어버린 것은 나쁜 일이다. 게다가 먹지 않았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있다”며 “1주일 간 운동장 청소“를 구형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인 강혜진 어린이(6년)는 “피고인이 남의 도시락을 먹었을 리가 없다”며 “혹시 유죄라고 해도 1주일 간이나 운동장 청소를 시키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변론했다.

피고인은 최후 진술에서 “저는 요즘 살을 빼려고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남의 도시락까지 먹을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억울합니다. 판사님들께서 현명한 판단을 해 달라”며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피고인이 끝내 범행을 시인하지 않자 일부 방청석의 어린이들은 ‘저럴 수가 있느냐’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결국, 재판부는 “증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피고인이 깐돌이의 도시락을 몰래 먹어버린 사실이 인정된다”며 “다만, 평소 학급 활동에 적극적이고, 모범적인 활동을 한 점 등을 감안해 운동장 청소 3일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각자 역할을 맡았던 어린이들은 “재판이 신기하고, 법원이 하는 일을 잘 알게 됐다”며 법의 소중함을 알게 된데 대해 뿌듯해 했다.

특히 피고인 역할을 맡았던 어린이는 “나쁜 일을 해서 법원에 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날 이 학교 어린이 모의재판은 학교 측이 제주지법 홈페이지에 모의재판을 신청한 것이 계기가 돼 성사됐다.

 학생들을 인솔한 현정렬 교무부장은 “5월 셋째주 체험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법원 견학과 모의재판을 신청해 법원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이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지법 공보관 이계정 판사는 모의재판을 맡았던 어린이들에게 “모두 역할을 잘 했다“고 평가했다.

이 판사는 “오늘 모의재판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열리게 될 것”이라며 “지법은 홈페이지를 통해 모의재판을 신청하면 중.고교생, 대학생, 성인 남녀 구분 없이 기회를 제공해 ‘도민에게 다가가는 제주법원’이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