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고사리 꺾던 날에 부르스

2008-04-29     제주타임스

요즘 기름값이 천정부지다. 이런 이유로,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고객서비스차원에서 차 트렁크에 물건을 비우고 운행하라는 메세지를 받았다. 이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지난 일요일에 차를 가지고 아내와 같이 운동 겸 고사리를 꺾으러 갔는데 엄청난 사고일보 직전에서 운의 좋아서 가까스로 사고는 면했다. 나는 자동차가 지프차이므로 길 정리가 안 된 들판을 달리다가 차에서 연기를 나는 것을 보고 차를 세우고 큰 사고를 면했다.

이유는 차에 냉각수가 떨어진 것이다. 미리 정리하지 못한 나의 자동차와 나의 삶이 같은 것만 같아서, 그날 하루 종일 고사리를 꺾으면서 나의 정리되지 못하고, 세련되지 못한 나의 사생활 죄를 돌아보고 반추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로 하여금 얼마나 많은 피해와 스트레스를  주었는가를 생각하며 내 삶의 순간들을 돌이켜 보았다.

자동차에 냉각수를 채우지 못한 것과 같이 꼭 해야 할 될 일을 미루어 버린 것들을,  제때 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나를 아는 지인들에게 직,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direct, indirect effect)을 주고 살아온 것만 같아서 이다. 이런 것 모두 내 탓이다.
세상사란 나의 자동차와 같이 무거운 것을 비우고, 필요한 것은 채우며 사는 것은 생의 섭리(攝理)인지도 모른다. 자동차 트렁크에 무거운 짐 같이 나의 마음에서 비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요즘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너무도 식상(食傷)하게 쓰는 말이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는 것은 자신의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 이다. 불교에서 마음을 비우라는 교리는 중생들이 세사의 속박과 번뇌, 미망(迷妄)과 아집에서 벗어나 선(禪)의 세계를 가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선의 세계에는 만남(인연), 이별, 고독, 명상, 영혼, 침묵, 진리, 고향, ....등등 정신의 세계와 바람, 비, 구름, 나무, 바위, 해와 달, ...등등 실존세계의 진실을 알기 위해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이게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과 열반이다. 해탈은 깨달음이다. 깨달음(enlightenment)과 아는 것(knowledge)이 차이는 인식할 때 아픔을 수반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이다. 나는 얼마나 아픔을 참으면서 살아왔는가? 아픔이 있으면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자기합리화로 삶의 독백(獨白)피운 것만 같아서, 후회와 반성으로 고사리가 눈에 안 보인다.

또 불가에서 말하는 열반(涅槃)은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채우기 위해 죽음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나는 오늘 고사리를 꺾으면서 비우고 채우지 못한 나의 자동차가 내 삶의 실상이라고 생각해 본다. 사람들의 삶에는 비울 것은 비우고 채울 것은 채우며 살아가는 것은 생명이 섭리이고 생명의 기본이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못한 내가 부끄럽다. 나는 나의 자동차를 통해 나를 보게 된 것이다. 단 것, 쾌락만 좋아하고, 세상의 이치를 모르고 욕심만 내고, 모자람으로만 채워진 나의 실체, 그런데도 나는 얼마나 오만하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이제까지 살아 왔을까? 자신만만하게 나를 드러내어 놓고 생각했던 지난날들을 오늘 고사리를 꺾으면서 생각하니 그저 부끄러운 것들뿐이다. 먼저 떠나보낸 가족과 사별도 내가 원인 것 같고, 아이들의 일류 직장을 못 가진 것도 나의 게으름인 것 같고, 아내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나의 잘못이 많은 것 같다.

이제 나는 ... 앞으로 아무리 인생의 싸움과 경쟁의 연속이라고 해도, 온갖 욕망이 인간의 속성이라 해도, 오욕칠정(五慾七情)의 나를 끈질기게 유혹하려고 해도, 삶이 고달프고 나를 속이려든다 할지라도, 자동차트렁크에 짐을 꺼내듯, 자동차에 냉각수를 넣듯 좋은 시(詩)를 열심히 읽으려고 한다.

“인생을 밝게 생각할 때나, 어둡게 생각 할 때도, 나는 결코 인생을 저주하지 않으리.” 라는 헤르만 헤세의 시  구절을 되뇌면서, 한라산의 오후 봄볕을 맞으며 동부 산업도로로 아내와 같이 집으로 내려오는 길목은 아픔인지 슬픔인지 모를 싸함이 가슴을 더 아리게 했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