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신구범 前지사 재판 결과에 대해-드레퓌스 사건을 생각한다

2008-04-17     제주타임스

대법원은 지난 2월28일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에 대한 특가법상 뇌물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신구범 전 지사는 도지사 재직 시인 1996-97년경 관광지구 지정 청탁과 관련해서 H씨로부터 30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제1심에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항소심과 대법원 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되어 결국 유죄로 확정되었다.

그런데 신구범 전 지사가 뇌물로 받았다는 30억원은 사회복지법인 은혜마을 산하 평화양로원 설립에 전액 사용되었고 평화양로원은 지금 잘 운영되고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구범 전 지사가 뇌물을 받았다는 대법원의 재판결과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재 신학대학교 교수이고 목사이며 사회복지법인 은혜마을 대표이사로서 뇌물을 공여했다는 H씨 내외와도 잘 아는 사이이다.

필자는 법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상식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번 대법원 재판결과를 이해할 수가 없다.

신구범 전 지사와 H씨와의 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가 알고 있는 바에 비추어 볼 때 대법원이 어떻게 해서 H씨가 양로원에 출연한 30억원을 뇌물로 보았는지 그 까닭을 알 길이 없다.

뇌물을 주었다는 H씨 내외는 필자가 잘 아는 사이로서 특히 그의 부인은 신앙심이 돈독하여 하루에도 몇 시간씩 기도생활을 하는 독실한 신자이다.

그녀는 평소에도 사회적 약자인 소년소녀 가장, 불우한 노인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와왔고 평화양로원 설립기금 기부행위는 그 관심의 구체적인 표현이었다.

H씨 내외는 제주도에 사업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평소에도 제주도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돕겠다는 생각을 해 왔고, 지역사회를 위하여 할 일을 찾는 중에 마침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의 소개로 신구범 전지사의 부인을 알게 되어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기로 하고 30억원의 기금을 출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의의 기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뇌물공여로 둔갑하게 되면서 H씨 내외는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자 H씨 내외는 필자에게 사회복지법인 운영에 참여해 줄 것을 부탁하였고 필자는 그들을 돕는다는 차원에서 사회복지법인 이사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그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참고로 필자는 신구범 전 지사와는 일면식도 없으며 1심 재판 후에 단 한번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을 뿐이다.

30억원의 기금 출연은 H씨의 계좌에서 법인 계좌로 송금된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뇌물이라면 은밀하게 주는 것이지 어떻게 바로 은행 계좌로 넣어줄 수 있겠는가? 그 점만 비추어 보더라도 30억원의 기금 출연은 뇌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H씨 내외로부터 30억원을 출연하게 된 경위에 대하여 자세하게 들은 바 있다.

당시에 H씨 내외는 사업을 위해 특별히 뇌물을 줄 이유도 없었다.

1894년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치적인 사건이었다.

유태인 포병대위 드레퓌스는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군법회의에 의해 종신형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유죄이유는 파리의 독일 대사관에서 몰래 빼온 정보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 필적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는 없었으나 그가 유태인이라는 점이 혐의를 짙게 하여 결국 그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당시 지식인들 특히 소설가 에밀 졸라 등이 앞장서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졸라는 ‘나는 탄핵한다’는 논설을 썼다.

이를 계기로 사회여론이 비등하여 프랑스 전체가 ‘정의? 진실? 인권옹호’를 부르짖는 드레퓌스파(再審派)와 ‘군의 명예와 국가 질서’ 를 내세우는 ‘반(反)드레퓌스파(反再審派)’로 분열되었다.

드레퓌스파는 자유주의적 지식인을 비롯하여 사회당·급진당이 가담하여 인권동맹을 조직 하였고, 반드레퓌스파는 국수주의파·교회·군부가 결집하여 프랑스 조국동맹을 결성했다.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석방문제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적 쟁점으로 확대되어 제3공화정을 극도로 위기에 빠뜨리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되었다.

1898년 여름경 군부는 새로운 증거 서류에 의거 하여 드레퓌스의 유죄를 확인하였으나 그 서류는 날조된 것으로 판명되었고, 그 서류를 제출한 사람은 자살하였다.

그 후 드레퓌스는 다시 재판을 받게 돼, 1906년 최고 재판소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신구범 전지사의 재판결과를 보며 드레퓌스사건을 생각한다.

드레퓌스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신구범 전 지사가 다시 재판을 받아 누명을 벗고 석방될 수 있는 길은 없겠는가. 아니면 대통령의 사면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리라고 믿는다.

유   석    성
서울신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