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하수, 사기업 영리목적 안 된다
한국공항은 허가대로 자체 소비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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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계열사인 한국공항은 지난해 4월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제기한 ‘보전자원(지하수) 반출허가 처분 중 부관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했다. ‘반출 목적;계열사 판매’ 부관이 취소 판결됐다.
이에 앞서 1심인 제주지법은 ‘부관은 적법하다’고 판결했으나, 2심인 광주고법 제주부는 ‘반출 허가 처분 부관은 부칠 수 있지만, 재량권의 남용과 일탈’을 들어 한국공항의 손을 들어줬다.
아울러 대법원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심리의 불속행)에 의거, 본안 심리없이 제주도의 상고를 기각했다. “부관은 행정 목적상 필요한 범위를 과도하게 침범했고, 공익에 비해 피해를 입은 사익이 너무 커 비례의 원칙에도 위배되므로 재량권을 일탈한 위법한 것으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단한 2심의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대법원도 2심의 취지대로 “국제자유도시특별법의 규정에 따라 제주도가 취수량을 제한하거나, 반출량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지하수 보전.관리를 위해 적법한 수단”이라고 밝힌 사실이다.
계열사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부관은 취소됐지만, 특별법의 규정에 따라 한국공항의 먹는 샘물 취수량 또는 반출량은 제주도에 의해 계속 제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한국공항은 부관취소 판결을 내세워 먹는 샘물을 ‘제주삼다수’처럼 시장에 판매하겠다고 나섰다. 사실, 대법원 확정 판결 당시 우려했던 점도 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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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대법원의 판결은 ‘시판 허용, 취수량 제한 가능’이었다. 제주도와 많은 도민들의 간절한 소망인 지하수의 공수(公水) 개념에 의한 관리 정책이 사실상 무너져 버린 것이다.
제주도가 딜레마에 빠진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취수량은 계속 제한해 허가할 수 있게 됐지만, 시판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법리적인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어떻든, 제주의 지하수가 사기업의 영리 목적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는 게 제주도뿐아니라, 많은 도민들의 생각이다. 대법원의 판단은 제주의 지하수를 다른 지방 지하수의 이용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한 것이고, 법리만으로는 그렇게 판단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의 지하수는 섬이라는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함유량이 제한적이다. 취수량을 제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심이 바로 이런 판단을 했다.
아마도 대법원이 제주의 지하수를 이런 개념에서 봤다면, 반대의 판단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외국 섬 지방의 지하수 개발.이용의 실태까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판단에 참고했는 지도 궁금하다.
공수(公水)의 개념에 사익의 피해를 들어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판단 자체가 적정한 것인지, 바로 많은 도민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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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언제든 다시 바뀔 수 있다. 앞으로 제주도가 제주 지하수의 특수성과 외국 섬 지방의 지하수 이용 사례 등을 연구 검토해 설득력 있는 방안을 갖고 다시 법적 대응을 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그 이전에 당장 시급한 것은 한국공항에 대해 먹는 샘물을 대한항공과 임직원 판매 및 사무실 등 자가 소비 등에만 사용(연간 3만6000t)토록 한 허가 조건을 반드시 이행토록 하는 것이다. 이 것을 어기는 것은 법리문제를 떠나 분명히 계약 위반에 해당한다.
한국공항은 이제 제주도와 도민들이 반대하는 물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제주 지하수 판매로 얻는 이익보다 제주도와 지역 주민의 반대와 반발로 인해 잃을 기업의 이미지를 더 심각히 판단해야 한다.
세계 어디에도 대기업이 지자체가 반대하고, 지역 주민이 원치 않은 지역 정서에 반(反)하는 영리 목적의 지역내 사업을 막무가내로 벌이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그 것은 법률적 판단 이전에 기업의 윤리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