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제주 혁신도시 중단 없이 나가야

2007-12-23     정흥남


“홍수와 가뭄을 당했는데도 갑자기 세금을 징수하고 부역에 동원시키는데, 부역과 세금의 시기가 정해지지 않으면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치는(朝令暮改)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는 한나라 때 어사대부라는 벼슬을 했던 조착이라는 한 관료가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정에 올린 상소문의 일부다.

이 상소문의 요지는 나라(정부)가 아침에 명령을 내렸다가 저녁에 뒤바꾸는 바람에 할 일이 많은 백성들이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이 상소문에서 비롯된 이른바 ‘조령모개’는 세월이 지나면서 정부 정책이 원칙 없이 바뀌어 공신력을 잃는다는 상징어가 됐다.

▲ 전국 첫 기공식 제주서 열려

수도권 과밀억제를 통해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국가의 정책은 1980년대 이후 정부의 주요한 시책의 하나로 자리 잡아 왔다.

이 연장선에서 노무현 정부는 기존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의 일환으로 수도권 소재 178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통한 10개 혁신도시 건설사업을 추진했다.

 여야도 이에 합의, 올 2월 11일‘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법적 뒷받침까지 했다.

이 법률을 근거로 서귀포시 서호동 일대에도 혁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다.

115만㎡ 부지에 3465억 원이 투입되는 제주 혁신도시는 관광·국제교류·연수도시로 개발된다.

이곳에는 1800여 가구 5000명을 수용하게 된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재외동포재단, 건설교통인재개발원, 국세공무원교육원, 공무원연금관리공단, 국세청기술연구소, 국세종합상담센터, 한국정보문화진흥원, 기상연구소 등 9곳의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이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된다.

제주혁신도시는 지난 9월 전국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기공식을 가졌다.

▲ 순탄치 않은 미래 곳곳서 감지

감사원은 지난달 22일 건교부 등 6개 부처와 21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지역개발사업 추진실태’ 감사결과를 공개하면서 혁신도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감사원은 “혁신도시가 기업과 연구소·학교 유치를 통해 지역거점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구유입 계획이 필요하지만 대책이 미비하다”며“혁신도시가 성공하려면 산·학·연 클러스터 조성 대책이 필요한데도 이에 관한 연구용역 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일부 언론은 혁신도시 사업의 부정적 측면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혁신도시 사업 재검토까지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9월 제주 혁신도시 기공식에서 “임기 안에 첫 삽을 뜨고 대못을 박아버리고 싶다”며 혁신도시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나온 노 대통령의 이 발언은 노 대통령에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던 일부 언론들을 자극시키는 등 적잖은 파장을 몰고 왔다.

당시 한나라당도 이 발언을 문제 삼았다.

▲ 정권교체 ‘희생양’불안감 확산

올 대선에서 노무현 정부에 반감을 가진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이 같은 선상에서 이명박 정부가 혁신도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구구한 억측들이 많다.

제주시 집중으로 가뜩이나 소외된 산남 지역발전과 경제 활성화의 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제주 혁신도시에 대한 지역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지역분권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해 온 혁신도시 사업이 정권교체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지역민들의 입장에선 혁신도시에 대한 기대감이 무엇보다 크다.

침체된 지역경기와 사회분위기를‘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혁신도시라는 ‘전환기적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혁신도시가 정권교체 과정에서‘국민으로부터 심판받은 과거 정부의 유산’으로 치부돼 추진동력을 잃거나 정책 우선순위에서 뒷전에 밀리지 않기를 지역주민들은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다. 

정   흥   남
편집부국장/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