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역시 배심원에 달렸다

제주지법, 어제 모의재판…'드라마 같은 공판' 시연

2007-11-12     김광호
“피고인 000은 무죄”.

국민참여재판 전담 재판부인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박평균 부장판사, 김도형.상종우 판사)는 12일 오후 강간상해 및 절도 혐의로 구속 기소된 A 피고인(31.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판결에 앞서 “배심원들의 평결 결과 피고인에 대해 만장일치 무죄 의견이 나왔다”며, “재판부도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실제 재판이 아니라, 국민참여 모의재판에서 나온 판결이다.

택시기사인 피고인은 술에 취해 잠든 뒷좌석 여자 승객 B 씨(25)의 핸드백을 절취하고, 강간하려다 반항하자 피해자를 택시 밖으로 밀어내고 도주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와 증인 C 씨의 진술이 일치하고 있지만,
피고인 택시의 타고미터 기록 등에 비춰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배심원들의 유무죄 평결은 의견일 뿐, 재판부를 기속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배심원들의 평결이 재판부의 판단과 일치할 경우 바로 선고로 이어진다.

12일 국민참여 모의재판이 열린 제주지법 제201호 법정은 마치 드라마같은 법정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와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배심원 참여 재판이 열려 유죄를 입증하려는 검사(제주지검 임세호.권선영 검사)와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허상수.송호철 변호사)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검사와 변호인 간 신경전은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날 오전 재판부는 공판에 앞서 30명의 배심원 후보자 중 10명을 추첨을 통해 배심원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검사와 변호인은 질문 과정을 거쳐 1차로 모두 6명을 기피 신청했다. 이어 2차에서 2명, 다시 3차에서 2명을 기피 신청해 6명의 배심원을 새로 선정했다.

결국 여러 차례 기피를 통해 남.여 각 5명씩 10명의 배심원(1명 예비배심원)이 선정됐다. 이 가운데 모의재판에는 9명(남자 4명, 여자 5명)이 참여했다.

이처럼 배심원 선정 과정이 말해 주듯, 배심원이 잘 못 선정될 경우 엉뚱한 유무죄 평결과 양형 의견이 제시될 수도 있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려면 우선 배심원 참가 희망률이 높아져야 하고, 배심원 후보 선정도 면밀히 이뤄져야 한다.

지법은 모의재판을 앞두고 500명을 무작위 추출해 배심원 참가 신청서를 발송했다. 하지만 신청서를 보내 온 사람은 고작 32명이었고, 이 가운데 30명을 배심원 후보로 선정했다.

사실상 선별조차 안 된 인원을 모두 배심원 후보로 선정했고, 이 중에 9명이 최종 배심원이 됐다. 다행히 이들 배심원들은 재판부와 일치하는 만장일치 무죄 평결을 내렸다. 배심원들의 자질이 인정된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 실제 재판의 배심원 역할도 이와 같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가령 100명의 참가 신청자를 대상으로 30명의 후보자를 선정할 경우의 자질과 순수성 및 공정성에 비해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따라서 실제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좀 더 객관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배심원 참가 신청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적어도 100명 이상 신청하고, 엄선 과정을 거쳐 30명 정도의 배심원 후보자가 선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법은 이번 모의재판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드러난 저조한 배심원 참가 신청율을 거울로 삼아 보다 많은 배심원이 참가 신청을 하도록 집중 홍보 등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