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ㆍ군폐지는 ‘참여자치'의 후퇴

2004-09-01     강정홍 논설위원

행정계층 구조 개편은 중대한 문제다. 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출발도 무의미하다. 민감한 문제여서 우선 피하고 보자는 생각도 좋지 않다.
나는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여기서 두 개의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왜 나는 남과 다른갚 “왜 나는 스스로를 다스려야 하는갚

우리는 이 물음에 스스로 답해야 한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갖지 않고서는 자기 결정성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지 못한다.
언필칭 ‘국제자유도시’는 제주 사회를 보다 풍요로운 장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주 사람의 능력의 계발을 전제로 한다.

인간의 능력은 자아의식에 기초한다. 그렇다고 하여 자기만을 고집하자는 심사는 아니다. 오히려 남과 더불어 지역사회의 목표와 조화를 이루는 이른바 ‘기능적 자아’가 자라지 않으면 인간 능력의 계발의 의미가 없음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국제자유도시’가 지역 주민들에게 의미 있는 개발이 되도록 ‘자주적 결정’과 ‘행위적 책임성’이라는 지방자치의 민주적 원리를 전면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뜻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공소(空疎)한 질문을 던져 본질 문제를 흐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또한 무성한 지방화론을 한가롭게 즐기자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국제자유도시’가 제주사람의 잠재력 계발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그에 합당한 정치체제는 ‘참여의 원리’에 근거한 것이어야 함을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참여’는 단순히 공적인 합의를 제공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주민자치이고,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사람들을 산출하는 사회 정치적인 실천의 산실이어야 한다.

단층제는 또 다른 권력 집중

자기 조직권이 없는 ‘참여’는 무의미하다. 대표자를 뽑고, 그리하여 자치단체를 구성하는 자치 조직권을 박탈하고 ‘참여자캄를 논할 수 없다.

나는 시ㆍ군폐지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한다. 시겚봉?폐지하여 행정구를 두자는 것은 시장 군수를 뽑는 주민의 투표권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혁명적이다.

주민의 투표권을 바탕으로 한 자치단체의 자치권과 자율권의 확보없이 지역사회 내부에서만 자율권과 자발적 참여를 권장하는 것은 상호 모순이다. 광역 자치권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기초 자치권을 없애는 것도 논리적 모순이다.

능률성과 효율성이란 명분아래 기술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비용의 관점으로만 보는 것도 잘못이다. 여기서 ‘규모의 경제’를 거론하는 것은 정말이지 가당찮다.

시ㆍ군폐지하는 단층제는 또 다른 권력 집중이다. 행정계층 구조가 주민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일종의 기술이라면, 이 점 또한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겪어 왔던 갈등의 병인도 따지고 보면 독주와 권력의 남용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은가.

자치는 독립과 자율의 의미를 함축한다. 그 어떤 내용이든, 독주는 자율을 잉태하지 못한다. 자율이 없는 곳에 주인의식은 있을 수 없다. 주인의식이 없는 곳에서 향토애를 찾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믿을 건 주민의 창조적 활력뿐

‘참여자캄는 궁극적으로는 지역적 소규모적 정치제도를 지향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주민들이 지역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통제하는 힘의 수단의 하나가 바로 주민의 투표권이다.

물론 주민의 투표권은 ‘참여자캄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사회 전체의 운영 방식이 바로 민의에 바탕을 둬야 한다는 ‘참여자캄의 충분조건에서 볼 때 그것은 ‘참여자캄의 한 방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충분조건은 아무 의미가 없다.

‘참여자캄를 정치적 제도로만 생각하여 전개되는 정치적 논의들을 나는 오히려 경멸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입을 모으는 것처럼, 풀뿌리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한다는 자율성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이 복잡하고 첨예한 역사적 전환기를 헤쳐 나가지 못한다. 이 어려운 시기에 과연 누구에게 자기 운명의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는가. 역시 믿을 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 주민들의 창조적 활력뿐이다. 누가 그 창조적 활력을 제한하려고 하는가.

광역 자치권을 확대한다는 명분으로 기초 자치권을 박탈하는 것은 ‘참여자캄의 후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