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나리'가 남긴 교훈

2007-10-09     제주타임스

제주 땅을 삽시간에 물바다로 만들며 미증유의 재앙을 불러온 태풍 ‘나리’가 할퀴고 간 상처투성이의 산하를 채 수습하기도 전에, 제15호 태풍 ‘크로사’가 북상하며 애꿎은 비를 뿌리고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굵어지는 빗줄기를 보며 또 다른 피해를 불러오지 않을까 마음 졸여진다.

수재로 인해 도민의 겪는 아픔을 보며 헬레나 노르비치가 쓴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생각해 본다.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인 작가는 서부 히말리아 고원지대의 작은 라다크라는 마을에서 16년간의 현지 체험을 통해 현 세계의 사회적 생태적 위기의 본질을 명료하게 묘사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개발과 진보라는 이름아래 진행되어온 산업문명에 대한 성찰을 담아 낸 책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우리 제주의 선인들처럼 빈약한 자원과 혹심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조냥정신과 수눌음을 통한 협동정신이 강했고, 무엇보다도 자연에서 얻은 소산물로 생활을 하면서도, 재활용을 통해 자연으로 되돌림으로 철저하게 피드백이 이뤄지고 있었다.

자연과의 교분으로 생태적 지혜를 가지고 천년 넘게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며 풍족하지는 않지만 가난하다고 느끼지도 않으며 살아왔다. 또한 긴밀한 사회공동체적 삶속에서 정서적 심리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며 여성과 노인이나 어린아이 등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사회집단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었다.

 ‘헬레나 노르비치’는 라다크의 생활을 통해서 인간은 자연과 땔 수 없는 연관성을 재발견했으며, 편협한 산업사회의 경제적 패러다임이 자연의 훼손을 증폭시키며, 그 여파로 물과 공기의 오염, 빈부의 격차, 가족의 와해, 인종적 폭력, 토속문화의 해체 등의 부작용이 발생을 목격하게 된다.

라다크 마을의 평화는 서구식 개발로 인해 붕괴되기 시작했다. 환경파손으로 생태적 균형이 깨진 것은 물론이지만, 서구 자본이 압력에 의한 빈부의 격차, 인플레이션, 실업문제 등이 발생으로 급속하게 사회분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토착민들이 제3세계인으로 전락한 라다크의 실상을 참고하면서, 개발과 보존의 최대공약수를 찾아내야 하는 제주의 미래에 대하여 심사숙고해야 할 때라고 본다.

제주의 선인들은 삶의 지혜가 뛰어나 자연을 활용한 기지가 매우 돋보였었다. 선인들의 삶은 초가지붕과 돌담만 갖고도 충분히 설명된다. 비행기 날개모양인 유선형으로 된 초가지붕은 바람타지 않도록 과학적으로 설계되었고, 구멍이 숭숭 뚫린 돌담은 바람을 잘 걸러주게 되어있다.

48년 전 초강력 태풍 ‘사라호’가 제주 땅을 휩쓸고 지나갈 때, 제주의 집들은 대부분 허술하게 보이는 초가집들이었지만 별반 피해가 없었다.

이번 ‘나리’로 인한 피해의 원인은 제주산하에 골프장 등 각종 관광위락시설이 들어서면서 수로를 차단하거나 바꿈으로서 어떤 부락은 마을전체가 물에 잠겨버리기도 했다.

막대한 피해를 일으킨 저지대의 도심지 침수는, 복개하천 교각에 걸린 대형쓰레기 더미가 하천으로 유입되는 유수의 흐름을 원활하지 못하게 막아버린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는 진단이 나왔다.

천재는 막을 수는 없지만 인간의 지혜를 발휘하면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산중턱을 무자비하게 깎아내며 무리하게 진행해온 개발과, 콘크리트 속에 갇힌 교각아래가 하천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점검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든 것이 화를 자초하고 만 것이다.

‘나리’가 남긴 교훈은 향후 제주개발의 접근방식을 환경공학적 바탕위에 자연친화적인 개발로 전환시켜야 함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자연은 땔 수 없는 요소로서 환경에 대해 좀 더 우호적 시각으로 애착을 갖고 개발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중요한 이슈를 남기고 떠나갔다.

수천 년 간 보존되어온 자연의 질서와 존재가치를 인간의 필요에 의해 쉽게 허물거나 모습을 바꾸지 말고, 모든 개발은 환경을 생각하는 개발로 정립하게 될 때 재앙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게 될 줄 안다.

도지사께서 엄청난 재앙의 수습현장에서 수재민들의 겪는 어려움을 보며 구조적 결함을 근본적으로 고쳐나갈 방법을 찾겠다고 하니 기대를 걸어본다.

강  선  종
총괄본부장/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