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주해병과 9월의 역사

해병역사박물관 건립ㆍ해병의 날 축제 등 검토해 볼만

2007-09-04     제주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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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병의 역사’는 ‘9월의 역사’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만큼 ‘제주해병’과 ‘9월’은 역사적 사건의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1950년9월1일은 제주출신 청년학도ㆍ교사 등으로 구성된 해병3기ㆍ4기 3000여명이 제주시 산지항에서 전장(戰場)으로 출병(出兵)한 날이다. 6?5 전쟁이 발발하자 제주의 젊은이들이 조국을 구하고자 너도나도 자원 입대했고 한두달의 짧은 전투 훈련을 마치고 불타는 전장에 투입된 것이다. 이미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와 나라운명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이었던 때다. 이때부터 보름후인 9월15일, 3기ㆍ4기 생으로 구성된 제주해병들은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후퇴하던 한국군에 대반격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역할을 감당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탈환 때는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은 ‘4인의 해병’중 한명도 제주해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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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9월에 엮어졌던 이 같은 청사에 빛나는 혁혁한 전공(戰功)은 모두 제주해병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부터 ‘귀신잡는 해병’이나 ‘무적해병’의 이름이 전해졌다고 한다. 제주해병과 9월이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역사적 고리로 연결된 것도 여기서 연유된다. 여기서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전통도 세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출신 해병 3기ㆍ4기들이 출정(出征)했던 날인 1950년 9월 1일을 기념하여 제주해병전우회가 ‘제주해병대의 날’로 제정했다는 것이다. 지난 1일 제7회 ‘제주해병대의 날’에는 해병전우회원들의 시간행진과 의장대ㆍ장갑차 퍼레이드, 함정 공개 등 볼거리 행사로 관심을 끌었고 여기서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의 전통을 새롭게 다지며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조국을 구하고 산화한 선배 해병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그 뜻을 기렸다는 것이다. 초창기 해병대 병력을 해군에서 차출하여 구성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제주출신 해병 3기와 4기는 사실상 순수 해병 1기와 2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는 ‘진짜 해병대’ 창군주역은 바로 ‘제주해병대’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9월1일을 ‘제주해병대의 날’로 정한 역사적 의의도 여기에 있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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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해병전우회 측은 사실상의 해병대 발상지나 다름없는 제주를 ‘해병대의 성지’로 가꾸기 위한 각종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제주해병대의 날’을 ‘해병대 축제’로 승화시켜 내외 도민과 관광객들이 함께 참여 할 수 있도록 제주의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의욕도 보이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애국심을 불어 넣어주고 봉사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키는 계기 교육의 장도 마련한다는 것이다. ‘전투에서는 사자와 맹호처럼 용감하지만 평화시에는 소와 양처럼 부지런하고 순진한 해병대의 이미지’를 구축해 사회 봉사에 나선다는 것이다. 아무튼 ‘제주해병대의 날’이 도민적 축제로 승화되고 제주적 브랜드의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역 해병과 예비역 해병의 끈끈한 단합은 물론 도민적 관심과 지원이 절대필요하다. 해병의 역사를 한 눈에 볼수 있는 해병 역사 박물관 등 ‘해병의 집’ 건설과 제주해병의 상징탑인 새로운 규모의 ‘제주해병 탑’ 건립도 제주해병이 이뤄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제주해병전우회가 이러한 ‘영원한 해병 사업’ 추진에 앞장서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