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바캉스(vacance) 계절에

2007-08-01     제주타임스

최근에 읽은 린드버그여사의 <바다의 선물>라는 책을 여름휴가를 앞둔 모든 이들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시인이며 수필가이기도 한 저자가 여름휴가를 외딴섬에서 작고 보잘 것 없는 조개껍데기를 통해 나 자신의 생활과 주변 사람들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섬세하게 생각하며, 또한 문명세계에서 우리들의 겪는 수많은 부정적 요소들과 대립관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자신만을 위한 창조적인 휴식의 필요성을 생각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휴가의 사전적 의미는 ‘직장이나 학교, 군대, 단체에서 일정기간 쉬는 일, 또는 그 겨를’이라고 되어 있다. 바캉스(vacance)의 본뜻은 ‘빈터’ ‘빈방’ 빈틈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휴가는 우리가 바쁘고 피곤한 일상을 떠나 잘 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텅 빈 고독 속에서의 자기 발견, ‘쉼’으로써의 자신의 생의 리듬을 충전 하는 것이리라. 요즘 휴가는 고독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보다는 시끄럽고 이벤트성 산만한 분위기에서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고 나서 우리는 오히려 휴가 전보다 더욱 피곤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요즘 전국을 강타(强打)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무장 세력에게 납치된 자원봉사여행(voluntourism)도 이벤트성 이다. 좋은 일을 하려다가 탈레반에 피살된 고인에 대한 애도와 명복을 빈다.

그리고 나머지인질 22명이 무사히 구출되기를 전 국민들의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휴가봉사여행이 ‘착한 일을 한다는 느낌’은 당사자에게 잠시 줄 수 있어도, 도움 받는 지역주민의 문화적 입장에서는 미미 할지도 모른다.

미 시사주간 타임지 인터넷 판에는 Korean Missionaries Under Fire라는 제목으로 요즘 봉사활동여행은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봉사활동’보다는 사진과 비디오 찍기에 더 신경을 쓰는 ‘캠코더 봉사’라는 기사”를 보도 했다. (7월27일) 나의 단견으로는, 산업 사회의 출발과 더불어 여행의 의미가 쇠퇴한 것이다.

산업사회 이전, 전통적 의미에서의 여행은 순례(巡禮)에 가까운 여행이었다. 이와 같이 순례에 가까운 여행에 참여 할 때, 나그네는 길과 분리되지 않았고 그 길은 여행의 목적에 부합되어있었다. 이런 휴가여행은 자기고행의 여행이다. 하지만 산업사회가 전진되면서, 여행은 관광으로 이동 되고 있다. 여행은 사유(思惟)지만 관광은 소비이다. 대량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 생활자체가 관광화 하고 있다는 말은 이미 익숙한 말이다. 현대인들은 일상의 지루하고 기계적인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벤트를 갈망한다.

그러나 바다 이벤트에 가면 바다처럼 넓게 트인 마음을 배워오고, 산에 가면 산처럼 깊고 그윽한 마음을 배워오기도 할 테지만 꼭 박으로 나가야만 휴가가 되는 것일까? 주말에 한라산 등산이라도 하려면 새벽6시 이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영실이든 어리목이든 주차장에 파킹 할 수가 없다.

가히 주차 전쟁이다. 주차 못해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이 여름도 너무 많은 사람들의 등쌀로 산과 바다는 얼마나 몸살을 할까? 산과 바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평소의 일에서 잠시 물러나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욕심을 덜어낸 빈자리에 좋은 생각들을 채워 넣을 수 있다면, 오랜만에 홀로되어 인간사의 매듭진 부분들을 풀어내고 용서하는 정(feeling) 맛볼 수 있다면, 그래서 다시 기쁘게 일상의 소임으로 돌아갈 새 힘을 얻는다면.... 이는 곧 참된 휴가가 아닐까? 국내외 관광지, 유원지, 이벤트 행사장에 나가지 않아도 평범하고 고독의 맛을 아는 나름대로의 ‘바캉스(vacance)법’을 너도나도 터득하자고 나의 작은 정성으로 마음의 기원을 담아 당신들에게 초록빛 엽서를 띄워 보내고 싶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