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신과의 대화

2007-07-11     제주타임스

선조 때의 문인 정철은 금강산에 올라가 산봉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어와 조물주의 솜씨가 현란스럽기도 하구나. 날거든 뛰지 마나, 섰거든 솟지 마나. 연꽃을 꽂아 놓은 듯, 백옥을 묶어 놓은 듯.”(관동별곡) 산봉우리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산은 그 꼭대기에 조물주를 모시고 그의 조화를 신비롭게 빚어낸다.

그리하여 인간이 연상할 수 있는 예쁜 꽃이나 구슬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산은 천연의 대사원으로 종교의 근원이 된다.

석가의 설산, 모세의 시나이산 등등 신성한 경지에 다다르는 바탕을 이룬다.

산은 조물주의 솜씨가 빚어낸 산물이며 신과 인간이 대화를 나누는 심오한 공간이다. 우리 고장의 한라산도 이러한 경지를 잘 보여 준다.

태고에 조물의 신비로운 조화로 화산이 폭발하여 확확 치미는 화염이 솟구치면서 신성하리만치 아름다운 모습을 이루어내었다. 기묘한 분화구들, 기암괴석, 주상절리, 용암동굴 등등 우주 건축가의 존재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사람들과 만나고 싶을 때, 한라산은 기슭을 열고 내려오다가 사람 사는 꼴이 아니꼬우면 험한 골짜기와 등성이가 되어 올라가 버린다. 한라산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말을 하지만 그 비밀을 알아들을 수 없다.

자연의 순수한 법칙을 어기는 우리의 오만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라산은 그 안에 풍성한 생명을 안아 기르듯, 우리를 감싸고 보호하면서 누억만년을 그 가슴에 품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한라산이 생명을 안아 기르는 모체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의 불순한 자만심과 이기적인 탐욕 앞에서 한라산은 극도의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곶자왈이 무분별하게 파헤쳐지거나 자연 질서를 외면하는 과다한 개발로 인하여 생명의 젖줄이 잘려져 나아가는 것은 극히 작은 예에 불과하다.

“신이 창조한 것은 모두가 선 그대로였다. 그러나 인간의 손이 닿자 모든 것은 악으로 변했다.”(루소) 찰나적인 자기만족과 과대한 욕망이 우리 생명의 터전을 악으로 변질시켜 버리는 게 아닐까?

산의 골짜기나 인적이 드문 곳에는 게으른 인간의 양심을 도색한 쓰레기들이 함부로 쌓여 있다.

어떤 개발에 따르는 농약이 마구 살포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산속을 흐르는 핏줄인 지하수가 오염되어도 우리는 거기에 이미 무감각해 버렸다.

이제 우리는 온갖 생태와 생명을 품어 기르는 한라산에서 그 생명력을 바르게 찾아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산 자체가 신성한 조물주의 작품이요 그 실체임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한라산은 끊임없이 우리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때로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으로, 혹은 분노의 폭풍우로 그 비밀을 우리에게 전한다.

주상절리의 깎아 세운 바위 모서리에서, 동굴의 기묘한 돌맹이와 그 흐름에서 기암괴석에서 우리는 그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라산과 그 환경에서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를 획득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 유네스코는 우리 고장의 자연이 지닌 높은 가치를 인정하여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우리 고장만이 아니라 한국의 자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자랑은 커다란 과제를 제시한다.

영예로움이나 경제적 효과를 증대시키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대한 과제는 한라산을 사랑하는 일이다.

우리가 한라산을 생명체로 알고 우리 대화에 초대하여 마음을 열고 비밀을 나누는 영역을 넓혀가는 일이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