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기도하는 손', '보이지 않는 손'
칸트는 손을 가리켜 ‘눈에 보이는 뇌의 일부’라고 했다. 우리가 뇌의 명령을 받아 행하는 일 가운데 손이 가장 다양하고 많은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손은 사물을 만지며 알아채 보는 눈의 역할이나, 손짓으로 말하는 입을 대신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뇌의 일부
그래서일까, 손은 화가들의 그림 소재로도 곧잘 등장한다. 손 그림 가운데 독일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의 소묘 ‘기도하는 손’은 특히 유명하다. 이 뒤러의 ‘기도하는 손’에는 감동 어린 사연이 전해온다. 유명한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알브레히트는 그림공부를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역시 화가의 꿈을 가진 한스를 만나게 되고, 한스와 알브레히트는 함께 하숙하며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둘은 가난했고 돈벌이를 하면서 그림 공부를 같이 해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그림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이에 한스는 알브레히트에게 “내가 돈을 벌어 너를 도울 테니 네가 먼저 그림을 배운 다음 나중에 네가 성공해서 그림이 잘 팔리면 나는 그때 그림 공부를 하도록 하자”라고 제안했다. 알브레히트는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한스는 진심으로 권했고, 친구의 정성어린 제안에 감동을 받은 알브레히트는 그림 공부에만 전념하게 된다. 한스는 갖은 고생을 다하며 돈을 벌어 알브레히트의 학비를 댔고, 공부에만 전념한 알브레히트가 학교를 마칠 즈음에 드디어 그의 그림이 팔리기 시작했다. 이제 알브레히트가 한스를 위해 뒷바라지를 할 때가 온 것이다. 알브레히트는 어느 날 한스를 찾아갔다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 중인 한스의 기도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느님, 제 친구 알브레히트가 공부를 마치고 그림이 팔리는 화가가 되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의 손은 노동으로 손마디가 굳어지고 뒤틀어져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지만, 알브레히트는 앞으로도 유명한 화가로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 알브레히트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연필을 꺼내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했다. 이렇게 해서 알브레히트의 유명한 작품 ‘기도하는 손’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림에 간절하게 기도하며 모은 두 손의 주인공은 바로 알브레히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친구 한스였던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손의 역할은 매우 크다. 자식의 아픈 배를 쓰다듬어 낫게 해 주는 어머니의 ‘약손’이 있는가 하면, 경제학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등장하고, 음습한 ‘검은 손’도 작용한다. 애담 스미스가 시장경제의 가격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경제적 시장경제에서는 한편으로 가격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처럼 우리 인간의 통제영역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 그럼에도 그것은 어떤 규범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동시에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검은 손’은 ‘암시장’이나 ‘지하경제’가 가리키는, 합법적 경제영역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불법적 경제행위를 뭉뚱그리는 말이기도 하다.
순수한 사랑의 손이 중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들 경제용어가 정치권에서 사용되면서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특히 대선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최근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DJ(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인다”는 표현을 쓰면서 올해 대선 정국에 미칠 이들 두 전·현직 대통령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 같이 ‘보이지 않는 손’, ‘검은 손’이라 하면 어딘가 떳떳해 보이지 않고, 장막 뒤에서 풍기는 음모의 냄새가 폴폴 나는 느낌이 드는 것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터이다. 어차피 인간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존재가 아닌가. 어느 시인은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고 말했거니와, 내 손안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뒤러의 ‘기도하는 손’처럼, 우리 어머니들의 ‘약손’처럼, 우리 손은 순수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채워져야 하지 않겠는가. 오만과 욕심으로 가득 찬 ‘소유의 손’을 버릴 때 ‘빈손’은 다가올 것이다.
김 원 민
논설위원/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