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왜 골목상권인가
설자리마저 위협
지난 1일 ‘골목상권 왜 살려내야 하는가’를 주제로 이호동 소재 수퍼마켓협동조합 대회의실에서 범도민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김태환지사는 격려사를 통해 “대부분 ‘왜 살려야 하는가’로 제목을 잡는데 꼭 ‘왜 살려내야 하는가’로 제목을 붙인 것을 보면 그만큼 절실하다는 뜻일 것”이라며 “도 차원에서도 행·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실 그렇다. 골목상권은 반드시 살려내야만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대형마트가 아니다. 영세 자영업이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아들 딸 키우기 위해 하는 일이다. 먹고 살기 위한 장사다. 그러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한다. 이게 막히면 경제 구성의 가장 밑바닥인 가정경제가 파탄난다. 가정경제의 파탄은 지역 혼란을 부른다. 이를 막자는 것이다. 이게 바로 골목상권을 살려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어릴 때 사탕 사 먹자고 달려갔던 이른 바 ‘점방’이 골목상권의 터줏대감이었다. 이 점방이 남양체인으로 바뀌고 다시 수퍼마켓 등으로 몸집을 불렸다. 하지만 대형할인매장과 농협 하나로마트의 위세에 눌려 기울기 시작, 이젠 설자리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발길 돌리는 지혜 필요
골목상권을 살려내는 작업은 갱신이다. 자구노력이 없으면 안된다. 자활갱신없이 소비자들은 오지 않는다. 소비자는 우선 값싼 제품에 눈을 돌린다. 값싸고 물건만 좋다면 왜 소비자들이 찾지 않겠는가. 명품은 백화점에 가서 사면된다. 이들은 부자다. 문제는 우리네 이웃들의 발길이다. 이들의 발길을 돌려놓지 못하면 결과는 뻔하다. 홍오성 제주도체인본부협의회장은 “공무원들 먼저 골목상권을 이용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골목상권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들의 발길을 잡기 위한 골목상권 주체의 변화가 우선이다. 캠페인도 벌여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혹자는 말한다. 변화는 실패라는 큰 주머니를 달고 다닌다. 이 실패를 두려워하면 변화는 없다. 변화를 위한 몸부림은 곧 개혁이다. 개혁을 통한 변화가 지금 골목상권 주체들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다. 오라고 손짓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찾아오도록 만드는 환경구축이야말로 변화의 첫 걸음이다. 이 첫 걸음이 골목상권 연합체인 제주도체인본부협의회 탄생이다. 이 탄생을 소비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실패연구 필요
옛 얘기다. 고대 그리스와 토로이가 싸웠을 때 그리스군은 트로이를 전멸시키고 보복할 수 없도록 트로이 남성을 갓난아기 하나 없이 모조리 학살했다. 유일하게 숨겨진 채 트로이의 구세주로 촉망받던 한 소년마저 적발, 그 어머니로 하여금 천 길 벼랑에서 밀어뜨리게 함으로써 여자만의 슬픈 트로이로 변모시켰다. 이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최초의 실패로 휴머니즘이 상처입을 때마다 곧잘 이용돼 왔다. 이 학살을 저지른 희랍의 동시대인 작가 유리피데스가 ‘트로이의 여인’이라는 비극을 썼다. 그 잔혹한 자신들의 실패를 고발하고 참회하게 했다. 다시 그런 일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정신적 공유재산으로 후세에 물린 것이다. 너무 거창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커다란 손해에서 객관적인 교훈을 끌어내 이를 또 다시 유사한 실패로 번질 수 없도록 만드는 이른바 실패연구소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값비싼 교훈이 만들어지고 이는 전체의 공유재산이 될 수 있다. 지금 골목상권이 왜 처지고 죽어가는 이유는 분명 있다. ‘골목상권 왜 살려내야 하는가’의 물음보다 ‘왜 이렇게 됐는가’에 대한 실패연구가 성공의 첫 단추일 것이다.
김 용 덕
편집부국장 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