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아카데미즘과 앙데팡당
미술사적으로 아카데미즘은 가장 강력한 아카데미, 즉 고전적 규범에 충실한 고전주의적 경향을 지칭하지만, 시대에 따라 주류(主流)의 미술을 형성하고 있는 미술일반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아카데미에 반대하여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예술가협회가 있으니 이름하여 앙데팡당이라 한다.
앙데팡당전은 1884년 파리의 아카데미전에서 낙선한 작가들을 중심으로 반(反)아카데미즘 화가들이 함께 모여 개최한 전시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들은 엄격한 심사와 타성에 젖은 살롱전에 반대하여 심사가 없는 자유로운 전시를 표방하고 나섰다.
고흐, 세잔, 마티스 등이 모두 이 앙데팡당전 출신임은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아카데미즘과 앙데팡당을 새삼 대비시키는 것은 대한민국미술대전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국내 작가 최대의 등용문
알다시피 대한민국미술대전은 국내 최대의 미술공모전이다.
공모전의 가장 큰 존재 이유의 하나가 참신하고 유능한 작가를 발굴하는 데 있음을 감안하면 이 미술대전은 국내 작가들의 최대 등용문인 셈이다.
대한민국미술대전은 당초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란 이름으로 정부가 운영해오던 것을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민간단체인 한국미술협회로 이관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장관상 등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민전(民展)이 아니라 관전(官展)의 성격이 짙다 하겠다.
그래서 대한민국미술대전은 심사도 없이 자유로운 전시를 표방하는 앙데팡당전 보다는 엄격한(?) 심사를 거치지만 타성에 젖은 아카데미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대전이 이 시대 주류의 미술을 형성하고 있는 데서도 아카데믹한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대통령상에 병역특례 혜택까지 주어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모전이 비리 의혹에 휩싸여 갈팡질팡하고 있음은 유감스런 일이다.
사실 미술대전은 매년 심사 과정에서 수상자 선정을 둘러싸고 지연, 학연, 인맥 등에 치우쳐 수상자를 선정하고 금품이 오간다는 잡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경찰 수사 결과 지난해 치러진 제25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미리 수상작을 찍어 놓고 각본대로 심사하거나 중견 작가들이 돈을 받고 출품작을 대신 그려주는 등 고질적인 비리가 한꺼번에 밝혀졌다. 물론 이들 거래 뒤에는 거액의 금품이 오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시중에서는 ‘짜고 친 고스톱’이니 ‘유전특선 무전낙선(有錢特選 無錢落選)’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비리 의혹 등 형식적인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급변하는 국제적인 미술의 흐름과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렸던 ‘대한민국미술대전 개선을 위한 공청회’에서 나온 말이다.
미술대전이 아직까지 근대적 관전 형태와 도식적 장르 구분이 답습되면서 신예작가들의 작업 방향과 괴리되었고 실험적인 작품 및 사조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적 흐름에 완전 역행
특히 구상과 비구상으로 공모부문을 구분하는 것은 90년대 이후 장르 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완전히 역행하고 있어 신진 작가들의 등용문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뉴미디어아트 분야를 신설했으나 디자인부문에 배치하면서 설치, 영상, 개념미술 등 최신 예술의 흐름을 반영하기에는 역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서예, 문인화 등 전통예술분야는 별도로 하더라도 현대미술분야를 서양화, 한국화, 판화, 조소분야로 구분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한국화, 서양화, 판화, 수채화, 조각 분야의 경우 분야 구분 없이 평면, 입체, 매체 분야로 통·폐합하여 공모하고 공예, 디자인, 서예, 문인화는 공예디자인 부문과 전통미술 부문으로 통·폐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이제 미술대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50여년의 전통을 이어온 미술대전과 미술계 최대 단체인 한국미협이 비리로 얼룩지고 권위가 땅에 떨어진 채 이렇게 망가져서는 안 된다.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려면 미술계의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이 있어야 하며, 미술대전도 철저한 검증과 심사가 이뤄지도록 별도의 기구로 독립시키든지 개선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 원 민
논설위원/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