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부는 아군인가 적군인가

2007-05-01     김용덕

事實의 눈물

지난달 25일 박해상 농림부차관이 제주에 내려와 일선 농협조합장, 농가대표와 농정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박 차관은 이날 제주에 자주 내려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서두로 꺼냈다.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그리곤 (이 자리에 참석해 준 여러분에게) 고맙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겠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왜일까. 박 차관도 한미FTA타결로 제주지역의 심상치 않은 여론을 듣고 있었을 터다. 그 보다는 감귤농민들의 울분을 달래줄 만한 그 어떤 것도 갖고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강지용 한미FTA농축산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금 제주도민들이 가장 화난 것은 정부의 감귤피해축소다. 한미FTA타결보다 더 화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훈 제주감귤협동조합장은 “지금 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한미FTA체결이후 연간 658억원 피해규모는 제주지역 감귤피해실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이를 믿어도 되는 것이냐, 정부의 정확한 발표냐, 어떻게 된 것이냐”고 추궁했다.

박 차관은 이날 분명히 했다. “아직 정부의 그 어떤 공식발표도 없다. 현재의 농경연 발표는 믿지 말라”고.

그러나 5일만에 이 말은 완전 거짓이 되고 말았다. 지난달 30일 정부의 감귤피해규모 발표는 이미 알려진 농경연의 발표 그대로였다.

4.2 감귤산업 사망선고에 이은 4.25 농림부의 거짓말과 4.30 정부의 피해축소 발표에 순수 제주도민들은 이날 또 한번 사실(事實)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단장(斷腸)의 비분

몹시 슬프거나 비통할 때 흔히 ‘애 끊는다, 애 닳는다. 애 터진다. 애 간장 다 녹는다’는 표현을 쓴다. 애는 우리말로 창자를 말한다. 왜 비통하고 노심초사하면 창자가 닳고 끊어질까.

옛 문헌 어숙권(魚叔權 )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 보면 꾀꼬리의 단장(斷腸) 얘기가 있다.

중종(中宗) 17년(1522년) 어숙권이 서해의 옥곡(玉谷)에서의 일이다. 집 주인인 홍준(洪濬)이 꾀꼬리 어미와 새끼를 얻어 기르고 있었다. 어미는 망으로 얽은 조롱속에 넣어 기르고 새끼는 다른 곳에 두어 서로 소리는 듣되 보지 못하게 했다. 하루는 새끼를 가져와 어미 조롱속에 넣어주고 어미가 어떻게 하나 보았는데 어미는 새끼를 보자마자 큰 소리를 지르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그 주인집 아들이 장난삼아 죽은 어미 꾀꼬리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창자가 무려 열여덟 토막으로 갈라져 있었다.

두껍고 짧다는 서양인의 기름진 창자도 마음을 쓰면 가늘어 지는데 하물며 한미FTA타결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식물성 제주인의 창자는 손쉽게 닳아 끊어지고 녹아버리지 않겠는가.

미국에 의해 당하고 정부에 의해 속은 제주인의 애는 지금 단장의 비분으로 닳고 끊어지기 직전이다.

강희철 제주감귤협의회장이 오죽했으면 박 차관에게 이랬을까. “농촌경제연구원은 아군이냐 적군이냐”고. 그런데 이제는 피아(彼我)구분이 확연해졌다.

정부는 꺾어진 팔

흔히 피아를 구분할 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자기편에겐 몹쓸 짓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몹쓸 짓이란 무얼까. 해를 입힌다는 말이다.

팔이 밖으로 굽기 위해선 끊어져야(골절) 한다. 팔이 끊어지면 이미 팔로서의 기능은 끝이다. 때문에 제기능을 찾기 위해선 대수술이 필요하다. 지금 대수술을 받아야 할 대상이 바로 정부다.

우리는 정부를 믿었다. 그러나 정부의 팔은 꺾어진 상태였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이다. 꺾어진 팔인 줄도 모르고 안으로만 굽을 줄 믿었던 것이다.

비록 제주가 전국 1%에 불과하지만 육지부의 쌀과 같은 감귤을 보호해 주길 바랐다. 그것도 애걸복걸하면서….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정부는 감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것도 모자라 한미FTA체결에 따른 향후 감귤 피해액조차 축소 발표했다.

박 차관에게 농가대표는 그랬다. “더 이상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되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뽑을 필요가 없다”고. 또 다른 농가는 “아예 제주도를 미국 선진국에 팔아 도민들 잘살게 만들라”고까지 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 제주도민에게 비빌 언덕은 없다. 누군가 그랬다. “이 참에 그 옛날 탐라 독립국임을 선언하라”고.

김   용   덕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