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손학규와 힐러리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였다.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기 위해 중도 통합의 길을 선택했다는 그의 선언과 맞물려, 그와 절친한 작가 황석영도 제3의 세력화를 위해 ‘바람잡이’를 할 수 있다는 발언을 쏟아내었다.
정치판에서 황석영이 손학규 지지 세력의 핵심이라는 소문이 떠도는 판에, 막상 황석영은 “나는 손 지사를 위한 총대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 흐름을 위한 총대를 말했을 뿐이다.
내가 말한 중도론은 손학규 한 사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라고 선을 긋기도 하였다.
물론 지금까지, 남한 사회에서 좌우의 원심력이 너무 강하여 중도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오랜 반공주의로 좌파와 중도는 이미 붕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좌파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진보진영은 위기가 닥쳤으며, 뚜렷한 이념적 규정이 없는 중도는 존립하기조차 힘들어졌다.
이 상황에서, 중도의 출현이 과연 가능할까?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도 대선을 겨냥하고 있는 힐러리가, 한국에서 손학규가 우파정당에서 발을 빼려는 상황과는 정반대로, 좌파에서 발을 빼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힐러리가 한때 솔 알린스키(Saul David Alinsky 1909-1972)와 인연을 맺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알린스키를 버리고 중도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알린스키는 누구인가? 그는 마피아가 설치던 1930년대 시카코 도시빈민운동에 투신했던 급진적 좌파 시회학자이다. 특히 지역사회조직에 뛰어났으며, 철학자 마리뗑(Jacques Maritain)은 알린스키를 ‘금세기에 찾아보기 힘든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알린스키는 노동자와 도시빈민에게 뿐만 아니라, 중산층 내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상황에서 고생하고 있으며, 아무런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아 착취당하는 것을 직접 경험하였다.
그래서 그들과 같이 살며 그들이 스스로의 권익과 존엄성을 찾아 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지역사회 조직운동에 뛰어들었다.
힐러리는 1968년 그를 만나면서 보수 공화당을 버렸고, 그의 이론을 중심으로 ‘빈곤과의 전쟁’을 주제로 대학 졸업논문을 쓰기도 하였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사람들을 스스로 힘을 갖도록 돕는 알린스키의 일부 생각엔 공감한다”고 밝힐 정도로, 그와의 인연을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빌 클린턴(Clinton)과 함께 백악관에 입성한 뒤, 자신의 졸업 논문이 보수 논객들의 단골 비판 소재로 등장하자, 그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입을 닫아버렸다.
자신을 비난하는 보수 논객들에게, 자신은 급진적 사회운동을 옹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 <타임>은 급진주의 학생운동의 영웅으로 떠오른 알린스키에게 ‘인민권력의 예언자’란 칭호를 붙여주었다. 1971년 6월, 한국에도 다녀간 적이 있는 그는 당시 청계천 빈민가를 둘러보기도 하였으며, 감리교 조승혁 목사는 『S. D. 알린스키 생애와 사상』이란 책을 편역, 발간하여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한국 정치판에서 보수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중도 노선을 걷겠다고 선포한 손학규나, 미국 정치판에서 진보에 등을 돌리고 중도로 나서서 여성 대권을 노리는 힐러리나 모두 유권자를 의식한 몸부림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에 시인 김지하는 좌우의 양극단에 기울이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가운뎃길도 아닌, 그 전체를 함께 싸안고 들어 올려 차원 자체를 변화시키는 융합과 초월의 길을 중도로 제시하면서, 손학규에게 보수와 진보의 틀에서 벗어나라고 설득하고 나섰지만, 과연 이런 설득이 손학규의 대권 횡보와 한국정치의 앞날에 얼마나 득이 될 지 궁금할 따름이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