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감귤 FTA졸속 협상ㆍ전략 不在
1%허약한 제주道勢…"쌀 살리고 감귤 죽였나"
태양을 듬뿍 받는 쌀 거목 밑에서 감귤나무는 햇볕을 받지 못해 고사하는가. 제주감귤은 결국 쌀의 희생양이 되는가. 전국의 1%에 불과한 허약한 제주 도세(道勢)는, 우리나라 전체 국익을 위한 정부의 협상카드엔 안중에도 없었다. 한마디로 정부는 감귤에 관한한 무관심. 졸속협상으로 일관했다.
겉으로는 제주감귤이 생명산업이며 그 절박성을 잘 안다면서...
하지만 무턱대고 정부만 탓할 것도 아니다.
이런 정부의 속내를 잘 들여다보면 이번 정부의 한미 FTA 협상 언저리엔 제주도의 무대응과 차선책을 겨누기 위한 치밀한 전략적 부재도 자리하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제주도의 한·미 FTA협상 실책은 계절관세 적용 시기에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산 오렌지 수입이 집중되는 3~8월은 30%의 비계절관세를 적용하고, 노지감귤 출하시기를 이유로 9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는 현행처럼 50% 계절관세를 부과하는 비현실적인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3~8월에 생과용의 미국산 네이블 오렌지가 현행보다 20%p 낮은 30% 관세율로 대량 수입, 같은 시기에 출하될 하우스· 비가림· 월동 등의 시설감귤 피해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2월15일 워싱턴 7차 협상장에서 미국측 대표인 앤드류 스테판 농업분과위원장이 제주도 민·관 합동방문단에게 계절관세 부과 가능성을 처음으로 밝혔지만 이에 따른 도의 후속 대응전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측의 계절관세 부과 가능성 언급 후 2월21일 열린 FTA 8차협상 대응방안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협상품목 제외와 함께 계절관세 및 농축액 등의 품목별 대응전략 수립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제주도는 협상타결 직전인 4월1일에야 민동석 농림부 차관보에게 12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부과하는 방안을 공식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도는 당시 ‘감귤=쌀’이라며 한결같이 감귤도 쌀 처럼 만 취급해줄 것을 요구하며 계절관세 도입에 따른 제 3의 방안은 거의 준비하지 않았다.
원래 협상이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것이다. 대차대조표를 작성, 안쪽 호주머니 깊숙이 꽁꽁 숨겨두고, 내놓기 쉬운 건 이것밖에 없다며 바깥쪽 호주머니에 (예상) 계산서마저 놔둔채 상대방의 의중을 탐색하며 거래하는 것이다.
치밀한 계산과 계략에 의해 이뤄지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정부에서 일정 정도의 감귤 시장 개방은 충분히 예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쌀과 같은 대우’ 요구가 전략적 언어였다면, 제주도는 그 이후의 실제적인 내용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중앙정부에게 합리적 차선책(계절관세 도입 등에 따른 우리측의 실리 요구 방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줬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쌀과 꼭 같은 대우’라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득실을 따지는 엄밀한 현실을 고려한 차선책 마련도 중요한데. 명분만 주장하다가 제주 감귤시장을 내 주게 된 것이다.
미국이 전세계 수출 오렌지 물량의 1/3이 한국시장이고 보면 미국이 호락호락 넘어갈 리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제주도는 간과한 셈이다.
도 관계자가 협상 막바지에 이르러 노지·시설감귤 피해 최소화를 위해 계절관세 대응방안을 마련, 건의했지만 미국측은 9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부과하는 입장을 강력히 고수, 양보않은 채 수용되지 못한 것이다..
도는 4~8차 한미 FTA 협상 때마다 미국 2차례, 서울 2차례, 제주 1차례에 걸쳐 협상장을 방문하면서 미국측이 수용하지도 않을 ▲감귤은 제주의 생명산업 ▲감귤의 민감성 ▲감귤=쌀 등을 내걸며 감성적으로 시장개방 품목 제외(협상 예외품목)에만 고장난 레코드판 돌리기 식으로 호소해온 것이다.
이런 일련의 결과 등으로 미국측에 감귤시장을 내줬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노지감귤 출하시기가 아닌 9월을 계절관세로, 한라봉 등 미국산 오렌지와 함께 시설감귤이 본격 출하되는 3~8월을 비 계절관세 기간으로 합의하는 졸속협상으로 내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