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깨뜨리기
논설위원 김 승 석
지난봄에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가 흥행에 대박을 터뜨렸다. 이 영화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족과 형제에 대한 끈끈한 정과 사랑, 집착은 가족에 대한 감정의 태깔이 사뭇 다른 서구인들에게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문화다원주의시대가 도래하였음에도 제주사람들에게는 이런 가족 애(愛)가 습관처럼 익숙해져 변하지 않는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 가족 또는 소(小)지역 연고주의가 그것이다. 리장 또는 조합장에 당선되면 동향사람들이, 박사학위를 받거나 각종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또는 관직에서 영전 또는 승진하면 문중회, 마을회, 동창회 등에서 각각 신문에 줄줄이 광고하여 신문 1개 면을 며칠째 도배하는 육지에서 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과시(誇示)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제주속담에 “맹지 옷은 육춘까지 따신다” (명주옷은 6촌까지 따습다)는 말이 있다.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속담에는 “명주옷은 4촌까지 따습다”라고 했지만, 제주속담에는 이보다 2촌이 늘어난 6촌까지 따습다고 한 것은 가까운 친족이 부귀한 몸이 되면 자기나 그 주변사람들도 그 음덕을 입게 된다는 의미를 보다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자기 PR시대라고 하지만, 연고(緣故) 과시의 광고열풍은 마치 조선시대에 등과(登科)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이나 한 것인 양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사회까지 오염시키고 있어서 문제가 크다.
▶ 사람은 혈연, 지연, 학연 등의 다양한 연고 관계의 그물망 속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연고 관계는 생존의 기본바탕이 되며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것도 연고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어쩌면 연고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연고주의가 잘못되어 연고 관계에 있는 자들끼리 ‘끼리끼리 모이기’, ‘패거리’ 현상으로 나타난 사례가 적지 않았고 그래서 연고 관계가 없는 자들과 사이에 불신이 증폭되어 도민화합을 저해한 지난날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 세계는 넓고 문화는 다양하다. 그런데 국제자유도시화 과정에서 풍토병적인 자기 또는 연고 과시의 광고열풍은 배타적 연고주의, 소(小)지역주의를 고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열린 제주사회를 건설하려면 편향된 광고열풍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