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미인의 탄생

2007-03-28     제주타임스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의 장한가(長恨歌)는 다음의 구절로 시작된다. “황제가 색을 중히 여겨 나라가 기울 것을 생각하다.”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를 노래한 이 장편 서사시에서 우리는 연인을 잃은 황제의 깊은 회환의 흐름을 헤쳐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날개로 날아가는 두 마리 새가 되기를 염원하는 결말에서 짙은 애정을 보게 된다. 여기에는 시인 자신이 그의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애틋하게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지금도 자주 쓰이는 “나라가 기울다(傾國)”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류 역사에는 백만대군이 아니라 한 뼘 남짓한 여인의 얼굴을 가지고 국가의 흥망에 관여한 사례가 허다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뛰어난 아름다움에 임금이 현혹되어 나라가 뒤집히는 것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의 미모를 일컬어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한다. 초패왕 항우도 천하의 패권을 건 한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자결하면서 “우미인이여……”하고 연인을 절절히 부르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 낮았더라면 세계의 정세는 전연 달라졌으리라.”(파스칼) 이것도 오랫동안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명언이다.

아름다움은 강한 힘을 지닌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름다운 것은 모두 그 자체가 원천을 갖고 있으며, 그 자체로서 잘 갖춰진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시선이나 선입견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이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미는 우리 마음을 기쁨으로 고양시킨다. 시공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에는 언제나 새로운 생명력이 넘친다. 그래서 “아름다움이란 옛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항상 새롭다.”(아우구스티누스)는 말이 나왔고, 우리가 또한 새롭게 이 말을 듣는 것이리라.

아름다움이 여인과 결부되면서 그 가치와 힘을 뚜렷이 발휘해 왔다. 그것은 대지를 일깨우는 빗물처럼 활기를 돋우는 위력이 있었다. 시, 회화, 음악 등의 예술에 수없이 많은 미인들이 중심 소재로 등장하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증거한다. 오랜 옛날부터 미인은 예술가의 출발 선상에서 그들에게 암시와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수호신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인이 그에게 속한 아름다움을 발굴하고 가꾸어내기 위한 노력의 자취는 인간의 탄생과 기원을 같이하는 것 같다. 미의 여신 아포로디테에게는 옷과 보석, 그리고 화장을 담당한 여신이 항상 따라다녔다. 신화를 넘어 역사 속의 이야기도 있다. 초나라의 영왕은 허리가 가는 여자를 사랑했다. 초자라는 미인은 가는 허리를 만들기 위해 밥을 너무 적게 먹었기 때문에 힘이 없어서, 누가 부추겨 주어야 겨우 일어났다. 이런 노력의 흔적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사의 회전을 연상하게 된다.

오늘날은 아주 다른 형태로 미인이 탄생하고 있다. 패션이나 다이어트를 넘어서서 성형수술이 광범위하게 용인되면서 행해지고 있다. 자연미가 진실이라거나, 외모보다는 마음이 예쁜 게 참다운 인간미라고 하는 이야기는 낡은 유물함에 가둬진 지 오래다. 어차피 우리는 칼을 대서 외모를 가꾸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씁쓸한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에 자주 보도되는 내용이지만 성형수술의 후유증으로 패인이 되거나, 심지어 생명마저도 위태로운 일이 발생한다. 라이센스를 갖추지 않은 무면허 시술사에게 성형을 의뢰한 것이 화근이라 한다. 발랄한 미모를 가꾸는 시대에는 또한 인간을 유혹하는 사기꾼들도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씁쓸함을 느끼는 것이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