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日常의 기쁨을 그들에게…

2007-03-18     김용덕

감성충족이 시급

‘누더기틈의 볕살’이란 말이 있다. 고대 로마의 위대한 정복자 알렌산더대왕이 코린트의 철학 디오게네스를 찾아 소원이 뭐냐고 물었을 때 “지금 앞을 가리는 볕 좀 쬐게 해달라”는 부탁에서 비롯된 말이다. 사시사철 누더기 옷을 걸치고 사는 거지행색 같은 디오게네스는 그 ‘누더기틈의 볕살’이 그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이다.

최근 제주에 시집 온 외국여성에 대한 지원문제를 놓고 지자체와 농협 등 각급 기관에서 난리다. 낯설고 물설은 이 곳 제주에 시집 와 하루를 나기가 버겁게 살아가는 농촌정착 외국인 여성들.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 관심이 모아져 있다.

우선 배경에 관심을 갖자. 첫째는 경제적 이유다. 이를 먼저 해결해 주는 것이 첫 번째다.

농협 관계자는 그랬다. “어려운 친정을 위해 매달 돈을 송금시켜 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경제적 주체로서의 가계 참여가 필요하다”고. 이들에게 누더기틈의 볕살은 바로 자괴감 해결과 자존 회복의 첫 걸음이기도 하다. 그 볕살을 우리가 막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지원은 이들의 마음을 열지 못한다. 마음의 창을 열 수 있는 감성충족이 시급하다.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햇살의 따스함과 정겨움을 이곳에서도 느끼게 만들어 줘야 한다. 몸 비비고 산다고 해서 다 제2의 고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2의 고향으로 만들어 주는 배려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현실속 소황홀의 대구법

고려때 시인 김황원(金黃元)이 대동강 연광정(練光亭)에 올라가 그 경관에 취해 종일토록 글을 굽다가 겨우 ‘대야동두점점산(大野東頭點點山)’이란 한 구절만 짓고 기운이 빠져 대구(對句)를 짓지 못한채 통곡하며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밭두덩 초라한 울타리 밑에 보일락말락하게 노란 꽃들이 숨어서 피어 있는 것을 보곤 큰 감흥을 얻었다. “바로 이것이구나”하고 ‘소장서각점점화(小墻西脚點點華)’란 대구를 얻고 울음을 멈췄다.

앞의 점점산은 큰 것에 도취한 감흥(大興)을, 뒤의 점점화는 조그마한 것에 도취한 감흥(小興)이라고 해서 서로 맞는 대구를 말하는데 자주 이용된다.

소흥은 소황홀(小恍惚)이라고 한다. 고려 시인 이인로(李仁老)는 “산에 오르거든 성난 범의 수염을 엮으려 말라. 헤어진 옷 틈, 쬐어든 볕살에 조는 것만 못할 것을…”이라고 소황홀을 노래했다. 매월당(梅月堂)도 수려하고 웅장한 금강산의 큰 황홀보다 단풍나무 앞에서 굴러 떨어지는 이슬방울을 보고 맘속에서 붉은 구술로 받아들이는 작은 황홀을 더 노래했다.

지금 제주농촌총각에 시집 온 외국여성농업인들에게 자국에서의 생활이 큰 감흥이었다면 제주에서의 생활을 소감흥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한 셈이다. 시조와 시의 대구는 어쩌면 우리네 삶의 대구와 같기 때문이다.

실질적 상담 관심

제주도가 민간에 위탁, 결혼이민가족지원센터를 운영키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농협제주본부는 지역 조합을 통해 제주에 정착한 외국여성농업인 가운데 국가별로 상담원을 선정, 이들로 하여금 외국인여성농업인들의 상담을 통해 제주에서의 생활의 어려움과 현실적 문제를 찾는데 주력키로 해서 더 관심이다.

사실 외국여성농업인들의 가장 큰 애로는 실제 여기서 생활하고 정착해 살고 있는 1세대들이 제일 잘 안다. 그들을 활용해 첫 이민여성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시키고 어떻게 하면 제주에서 제대로 정착해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통해 제주생활에서 소황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친정어머니 결연맺기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면서 느끼는 조그만 행복이 그들의 감성의 문을 열게 만든다. 그것이 무엇일까에 우리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제주생활에서의 행복감을 바탕으로 고향방문이 이뤄질 경우 비로서 그들은 우리네 이웃이 되는 것이다. 소황홀은 늘 우리 주변에 있다. 바로 관심인 것이다.

김   용   덕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