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내 탓이다

2007-02-21     제주타임스

며칠 전 어느 사회단체행사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아래층 로비로 내려와 보니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교장선생님과 내가 잘 알고 있는 어느 유명인사가 같이 앉아서 두 분이 사이좋게 이야기 하며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듯 하였다.
날은 춥고 어두웠다. 나는 그 교장선생님께 말했다.
“댁으로 안 가세요?”
그 교장선생님께서는 옆에 앉아 있는 유명인사를 바라보시며
“이분 하고 같이 가면 차 태워줄 사람 있다고 해서...”
말이 떨어지자 마자 차키를 찰랑거리며 젊은 여자 분이 다가왔다.
내 제자면서 교장선생님의 제자이기도 했다. 두 분은 내 제자를 보자 반가워하며 갑시다하고는 얼른 뒤따라 밖으로 나가셨다.
그런데 뒤따라 나가셨던 교장선생님께서 혼자 쓸쓸히 돌아오셨다.
내 제자아이는 가는 방향이 좀 다르다고 하며 유명인사만 태우고 차문을 ‘탕’ 닫고 ‘부릉’ 시동소리와 함께 휘익하고 출발해 버렸다는 것이다.
동승하자는 그 유명인사의 말을 믿고 10분 이상을 기다렸다면서 멋쩍어 섭섭해 하시는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같이 택시를 탔다.
“교장 선생님. 섭섭해하지 마세요 섭섭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제자를 갈못 가르친 제 탓 입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도 같이 가르 쳤으니 교장선생님 탓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 아이를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우리 죄입니다. 우리 죄...”
교장선생님도 멋쩍게 웃으시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아이 부모에게 가정교육 탓을 할 수 도 없고 부모의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 탓을 하겠는가, 그런 식으로 책임을 따져보자면
한도 끝도 없을 테니 차라리 아이를 담임했던 나와 그 교장선생님의
탓이 큰 것일 게다. 교육현장에 있을 때 잘 가르쳤었더라면...
, 한마디로 있을 때 잘할 걸 부질없는 후회를 하였다.
그런데 며칠 전 어느 중앙지에 실린 <무능해서 슬픈 대통령>이란 제목의 칼럼을 읽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기분과 동시에 코끝이 찡함을 느꼈다. ‘나는 잘못한 것 없다. 그전부터 잘못했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조상 탓 하시는 우리 대통령이 측은 하다는 것이다.
정말 똑똑한 대통령을 비꼬아 하는 말이라면 가슴이 이리도 철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 글 내용에 나도 상당한 공감을 했다는
이야기다, 나만 그런 것일까?
‘무능해서 슬픈 대통령’이 아니라 나는 ‘무능해서 불쌍한 대통령’이라 말하고 싶다. TV에 나오는 대통령을 바라볼 때 마다 왜 그리 측은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보잘 것 없는 깃 빠진 초라한 암 참새 한 마리가 높디 높은 오동나무위에 의젓하니 앉아있는 화려한 봉황새더러 불쌍하다 했으니 다른 온갖 잡새들이 들으면 놀라자빠지고 없는 배꼽 빠질 정도로 웃기고 황당한 말이 아닐 수없다,
허나 사실이 그런 걸 어쩌랴!
물론 대통령만 불쌍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나와 국민들 모두 불쌍하다. 그래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불쌍한데 그 국민들은 오죽 하겠는가.
3년 전 대통령과 그 충신들은 민주당을 깨고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많은 의석수를 확보하고 여당이 되어 개선가를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새 인가 안하무인이 되어 큰소리를 쳤다.
‘100년 정당 30년 집권’이라 큰소리를 외치긴 했는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영리한 국민들을 바보로 우습게 여기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누가 바보이고 누가 영리한 건지 결국 열린우리당은 그네들이 호언장담했던 100년은 고사하고 5년도 못가 발병 났다.
3년 3개월 만에 남극의 빙산처럼 부서져 내리는 열린우리당을 바라보며 자업자득이라고는 하지만 안쓰럽고 불쌍하기까지 하다. 그네들한테 국정을 맡긴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면 걱정까지 든다. 그것도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갖다 바칠 것만 같았던 어제의 충신들. 그들이 과연 누구였던가. 공식 비공식석상에서 까지도
조금이라도 1cm라도 좀더 가까이 앉으려고 애쓰며 대통령이 무슨 큰나무인 양 메달려 붙어보려고 카멜레온처럼 이리저리 눈알을 빙글뱅글 좌우로 굴리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그랬던 그들이 썩어가는 나무에서 제일 먼저 내려와 몸 색깔을 바꾸며 다른 나무를 찾아 슬금슬금 옮겨 붙고 있으니 어찌 대통령이 불쌍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때 이것들은 남의 탓도 아니고 조상 탓도 아니다 결국 아이들을 잘 못 가르친 현재 살고 있는 내 탓이요 의원들을 잘 못 뽑아 국회로 보낸 우리들의 탓이다. 그리고 불쌍한 대통령을 만든 것도 우리 국민 모두의 탓이다.
금년 12월 19일은 대통령 선거가 있고 2008년인 내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앞으로 남의 탓하기 전에 국민들은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고 새대통령과 새 국회의원들을 잘 선출하여 국민들 모두가 안심하고 국정을 맡길 수 있도록 훌륭한 대통령과 의원들이 탄생되길 기대해 본다.

고   길   지 (수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