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ㆍ폭력 난무하는 아수라장 밤거리
제주서 남부지구대…본사 김상현 기자 동행취재
"시민회관 버스정류장 만취자 쓰러져 자고 있다고 함"
제주지방경찰청 112지령실로부터 신고 접수된 4일 새벽 0시 5분 제주시민회관 버스정류장 부근 도로.
이 곳에서 자신의 집처럼 마냥 쓰러져 자는 한 중년의 남자가 순찰조의 눈에 띄었다.
약간의 정신은 있어 보이는 이 만취자에게 경찰은 "집이 어디십니까. 집에 가서 주무셔야죠"라고 말하며 순찰차량에 태웠다.
연일 찌는 듯한 더위와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제주시청 일대를 관할하는 제주경찰서 남부지구대장 김형근 경감과 일선 경찰 2명이 본 기자와 함께 순찰은 이렇게 시작됐다.
만취자를 지구대로 데려가기가 무섭게 다시 여종업원 폭행 및 무전취식으로 신고가 들어온 제주시청 부근 S단란주점.
현장에 도착해보니 30대로 보이는 남자 3명이 술값 7만원을 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업주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는 20~30분간 계속해서 이어졌으며 여종업원들은 이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이들을 처벌해 달라고 주장했다.
"당신을 폭력 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경찰은 '미란다 원칙'을 알려준 뒤 이들과 여종업원들을 지구대로 데리고 왔다.
다행히 이들은 경찰의 조서를 꾸미는 과정에서 여종업원들의 변심(?)으로 석방되긴 했으나 1시간 30분 동안 지구대에서 난동을 부리는 등 교통 사고자와 단순 만취자 등 10여명이 뒤섞여 한때 이곳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이들 10여명을 돌려보낸 뒤 김형근 지구대장은 "이것이 보이지 않는 제주의 현실"이라고 한탄했다.
학교 주변과 공원을 중심으로 2차 순찰을 할 당시 또 다른 만취자 김모씨(35.제주시)는 자신을 도와주려는 경찰들을 절도범으로 오인, 발로 차고 욕설을 하는 등 이들의 수난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잠시 조용하던 2시 30분께 황급히 순찰차량이 지구대로 복귀했다.
이른바 '날치기' 범행을 하던 김모씨(28.북제주군 구좌읍)가 삼양파출소 경찰들과 남부지구대 사복경찰에 붙잡혔기 때문이다.
김씨는 30분전인 2시께 일도동 소재 동초등학교 부근 버스정류소 의자에 앉아있는 윤모씨(51.여)의 겨드랑이 사이에 있던 10만원권 4매 등 모두 68만원이 들어있는 손지갑을 빼앗아 달아난 것이다. 반면 피해자 윤씨는 조사가 끝난 뒤 경찰관들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시했으나 "붙잡히고 보니 아들 같은 김씨가 불쌍하다"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불법영업으로 민원이 제기되는 한편 변태영업을 한다는 오인신고, 애완견을 냉동실에 넣었다고 신고하러 온 40대 여인 등도 볼 수 있었다.
김형근 지구대장은 "하루평균 20명에 가까운 사람이 도로에 쓰러진 채 자고 있는 등 만취자들이 통제에 따라 주지 않을 때가 가장 난감하다"며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단순 폭행자들 역시 제재하는 데 진땀이 난다"고 애로사항을 털어놨다.
이어 "여름철 상당수 범죄가 술로 인해 시작되는 만큼 잘못된 음주문화를 바꾸는 게 최우선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지난달 19일 한 60대 노파는 '대학로의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남부지구대에 편지를 보내왔다. "옛날의 교육과 정서는 모두 어디로 흐르고 지금은 오염된 흙탕물만 흐르고 있는 것일까"라며 "지금도 학사로의 밤거리는 무질서 속에 환락가의 거리를 연상시킨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