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간판문화 혁신에 거는 기대

2007-02-05     제주타임스

“우리들이 호흡하며 살고 있는 이 대기는 산소와 질소, 그리고 광고로 이루어져 있다”는 로벨게랑의 말에는 오늘날 간판의 의미가 함축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간판을 수 천년 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간략한 언어로 무엇을 해라, 어디로 가라, 거기 가면 무엇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왔다.

그러한 생각을 나타낼 글자가 발명되기 전에도 상형문자라는 것이 있어서 동굴 벽이나 땅바닥에 그려놓은 그림문자를 보고 사람들은 무엇을 뜻하는 지 알았다.

오늘날에도 기업이나 상인들의 사업을 돕기 위해서 간판은 마케팅 전략적으로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광고를 통한 정보제공의 차원에서 간판의 커무니케이션 기능 또한 매우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간판이 CI(Corporate Identity)의 최종 시각 표현물이란 점에서 기업의 CI 완성은 간판에서 귀결된다고 말할 정도다.

언제나 시각적으로 혼란

그런데 이 간판이 언제나 말썽이니 이런 이율배반도 없다. 그것은 간판이 도시미관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등장해왔기 때문이다.

간판은 언제나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웠으며 불법으로 난무했었다. 그래서 행정기관에서는 오래 전부터 아름다운 간판문화를 창출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조악하고 불법적인 간판들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건물마다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은 간판에서 예술적이거나 심미성을 발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간판은 주거환경과 도시미관을 염두에 두고 주변 건물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만들어져야 한다.

도시의 가로경관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꼭 간판의 몫이라 할 수는 없으나 간판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도시행정에서 간판문화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특별자치도가 간판문화를 혁신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기대를 갖게 한다.

이는 옥외광고물을 단계적으로 개선해 제주도의 이미지를 국제적 관광도시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전략으로, 궁극적으로 간판문화를 지역문화로 자리 매김 하기 위한 구상이다.

제주도가 이를 위해 한국종합경제연구원에 ‘제주특별자치도 옥외광고물 종합관리방안 학술연구 용역’을 맡긴 결과 최근 그 중간 보고서가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제주도 옥외광고물 관리의 문제점으로 정책적 부재와 행정업무 조직의 부족, 지역환경의 특수성을 꼽았다. 옥외광고 전문업체의 자성과 광고업주의 자성 등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한 국제자유도시로서의 위상과 국제화에 걸 맞는 옥외광고물을 설치함으로써 관광도시, 지역문화가 가미된 제주만의 특징적인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관리방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특징적 관리방안 제안

사실 간판이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된 지는 오래다. 어떤 이는 간판을 ‘도시의 꽃’, 또는 ‘도시의 얼굴’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가 간판으로부터 받는 이미지는 혼란, 부조화, 조악, 무질서, 불법, 난잡 등이라 할 수밖에 없다.

수 년 전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광고들이 모두 ‘성공한 예술간판’이었음은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하겠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예술적이고도 예쁜 간판은 도시인들의 바이오리듬을 한층 높여주는 역할까지 한다고 할 것이다.

이번 용역 결과에서 나타난 것처럼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로서의 위상에 맞는 옥외광고 문화를 조성해 나가는 일은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될 주요 과제다.

사람이 사는 것에 간판이 없을 수 없고 도시미관에서 간판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할 때 간판문화 혁신의 핵심적 요소는 디자인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특히 간판을 간판 자체로만 이해하고 디자인 돼서는 안 된다.

가로경관과, 가로경관을 구성하고 있는 건물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 조형적으로 분석하면서 디자인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이번 용역 결과를 토대로 간판 자체가 하나의 관광상품이고 고유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김   원   민
논설위원/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