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짝퉁세상

2007-01-22     제주타임스

며칠 전 동네 사람들과 같이 홍콩을 다녀 왔다.
인천 공항을 거치지 않는 제주 직항인데다 항공료도 비교적 저렴하다해서 아침 새벽 비행기를 탔다. 기내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3시간 비행 후 아침 9시경 홍콩 공항에 내렸다.
일정대로 첫날은 북한의 김정일이 천지개벽이라며 놀라 감탄을 했다는 심천의 개발 현장을 돌아보고 이튿날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다.
노랫말 속에 나오는 홍콩의 밤거리도 볼 겸 세계작퉁들이 모두 모여 있다는 야시장을 보기위해서다. 야시장을 가기 전에 우리일행은 홍콩에서 제일 크다는 명품쇼핑몰에 들렸다.
일행 중 돈 있는 지인 한분이 ‘루이뷔똥‘ 이라는 상표가 붙은 핸드백을 한 개에 85만원을 주고 샀다. 그것도 두개 씩이나. 그 거금에 주눅이 든 나는 넋없이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 다음 야시장으로 갔다. 어찌된 일인가! 똑같은 루이뷔똥 핸드백이 2만 3천원이었다. 아무리 뒤집어 보아도 내 눈에는 똑 같았다. 싼 맛에 얼른 4만6천원을 주고 나도 두개를 샀다. 여행이 끝나고 다시 새벽 2시쯤 나는 그 가짜 루이뷔똥 핸드백을 들고 비행기를 탔다. 어떤 아줌마가 내가 든 루이뷔똥핸드백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내게로 왔다.
“그 가방 얼마 합디가?”
나는 그냥 웃었다. 내가 그냥 웃기만 하자 그 아줌마는 진짜 루이뷔똥 핸드백을 든 지인에게로 가서 똑같이 물었다.
“그 가방 얼마 줍디가, 한 3만원 줍디가?”
그 지인은 얼굴이 확 달라졌다. 얼굴이 그냥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아줌마는 그 것으로 그치지 않고 다시 말했다.
“3만원은 줬을 거우다. 난 척보면 압주마씀.”
어이가 없었다. 진짜와 가짜가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한 순간에 지인이 산 진짜 명품핸드백은 가짜가 되고 내가 산 것은 진짜로 둔갑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해외여행기분도 낼 겸 나는 젊게 보이려고 미장원에 가서 머리염색을 곱게 했다. 그 지인은 나이에 걸맞아야 한다면서 염색하지 않은 희긋희긋 한 할머니머리 그대로였다. 차이라면야 그 차이 밖에...
젊게 보이는 사람이 들고 다니면 가짜도 진짜로 보이고, 나이 든 사람이 들고 다니면 진짜도 가짜로 보이는가하면, 없는 사람이 가지면 진짜도 가짜로 보이고, 있는 사람이 가지면 가짜도 진짜로 보이는 세상이다.
세상에 가짜가 진짜로, 진짜가 가짜로 둔갑하는 일이 어디 한 두 가지인가.
얼굴도 가짜인 시대다. 무슨 리모델링공사마냥 얼굴을 확 갈아 엎으려는 환자 아닌 환자들로 성형외과 대기실은 북새통을 이루고 의사들은 그 얼굴을 놓고 만연의 미소를 지으며 가로세로 디자인하기에 바쁘다고 한다.
어디 그 것 뿐인가! 얼굴 갈아 엎는 것까지는 그래도 봐줄 수도 있다.
헌데 마음까지 갈아 엎으려는 건 문제가 크다. 마음까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이면 정말 큰 걱정이다.
금년 12월 19일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선거 때 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진짜 보다 더 진짜처럼 말이다.
도의원 후보는 오로지 도민을 위하여!
국회의원후보는 오로지 국민만을 위하여!
대통령 후보는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건국이래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 누구 한사람도 “나를 위하여”란 솔직한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나를 위하여”가 “도민과 국민과 나라를 위하여” 보다 더 많이 더 진하게 깔려 있음을 모르는 국민들은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달콤한 그 말에 속아서 귀중한 한 표를 믿고 찍는다. 그런데 믿고 맡겨서 하는 짓을 보니 이들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였던 짝퉁들 이었다.
텔레비전 광고문구가 새삼 생각난다.
더 생생하게
더 실감나게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이 말을 뒤집어보면 결국 가짜 중 최고 가짜란 말이 아닌가! 물건도 사람도 그 사람 말도 마음도 그 생각까지도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판치는 세상이 되었으니 진짜 진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바람일 것이다. 한시대의 큰 태풍일 것이다. 언젠가 그 태풍이 지나가고 머지 않은 미래에 진짜는 진짜로 가짜는 가짜로 볼 수 있는 질서있고 정리된 사회가 곧 오리라 나는 기대 한다.

고   길   지

제주여류수필문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