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공공미술 小考
도내에서도 최근 들어 ‘환경조형물’이나 ‘미술장식품’으로 불리는 ‘거리의 미술’을 낯설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른바 ‘1%법’에 힘입은 것임은 물론이다.
1%법이란 문화예술진흥법상 ‘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에 대한 규정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는 건축비용의 100분의 1(1%)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 공예, 조각, 벽화, 분수대, 상징탑 등의 환경조형물을 미술장식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것이 0.6~0.7%로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긴 하다.
이 1% 정책 운영의 근거로는 먼저 1930년대 미국 경제공황기의 공공미술 정책처럼 미술가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한 경우를 들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미술이 도시의 시각환경을 개선시킴으로써 관광객이나 기업 등을 많이 유치하여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다.
다양한 공간에 개입
공공미술은 구미(歐美) 여러 나라에서 1960년대 후반 이후 도시 중심부나 공공건물, 광장, 공원, 학교, 병원, 주택 등에 설치되는 미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다양한 공간에 개입하면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들 국가에서의 공공미술은 대부분 공공기관이 주도하고 공공기관에 의해 위촉되지만, 공공미술의 개념을 늦게 받아들인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미술이란 이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법을 만들고 공공기관보다는 민간에게 법의 준수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도내 공공미술로는 돌하르방 조각이나 정낭 형태의 조형물, 그리고 해녀상과 물허벅 진 여인상 등을 대표주자로 들 수 있으며 현대작가들에 의한 추상형태의 돌 조각이나 철골로 만들어진 조형물들이 호텔이나 대형 빌딩 등에 들어서고 있다.
또 공원 등 일부 도심지 녹지공간과 특정 거리의 장식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기도 하다.
공공미술이란 게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되는 작품을 지칭한다고 할 때 이것들은 모두 공공미술의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미술이 모두 도시환경을 아름답게 바꾸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환경조형물이 아니라 ‘환경공해물’이라거나 ‘공공 공해’라는 혹평까지 나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공공미술이 종전에는 작가 중심, 설치자 중심의 ‘권위’로 정당화되었으나 지금은 보는 사람과 공간, 환경 등 수용(受容) 중심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심미적 기능적 판단 필요
도내 거리의 미술들 가운데에도 너무 조잡하고 무성의하게 제작돼 제주의 이미지와 제주 돌 문화를 왜곡하고 있다는 빈축을 사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으며, 거의 비슷한 이미지와 형태의 조형물을 이곳 저곳에 세움으로써 오히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짜증나게 하는 일도 있다.
이제 미술장식품으로 불리는 공공미술을 설치할 때는 반드시 이의 심미적, 기능적 판단을 거치는 심의를 통과한 연후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리라 본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공미술이 또 다른 시각공해로 도시를 더럽힐 지 모른다.
미술가들이 아무리 정성껏 작품을 빚어 거리로 갖고 나온다 해도 시민(보는 사람)과 공간과 환경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거리의 미술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 설치된 공공미술을 철거하기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 설치할 때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다양한 카테고리를 가진 공공미술은, 그럼으로 하여 거리의 미술이 모두 공공미술은 아니라는 화두를 던져준다. 공공미술이란 시민의 삶과 도시에 개입해 공용공간과 일반 대중의 창의적 상상력을 촉발하는 가능성을 보여줄 때만이 그 생명력이 살아나는 것이다.
김 원 민
논설위원/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