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시가 흐르는 산지천
중국 상하이의 명소로 잘 알려진 와이탄(外灘)은 매력적인 곳이다. 황푸강(黃浦江)은 장쑤성[江蘇省] 타이후호[太湖] 동안(東岸)의 호소(湖沼) 지대에서 시작되어 동으로 흘러 상하이[上海]로 들어가 우쑹[吳淞]에서 양쯔강과 합류한다. 길이가 160km에 달하는 황푸강을 경계로 동쪽은 개발 금융지역인 푸동(浦東)으로 부르고 서쪽은 웅장한 건물이 줄지어 서있는 오래된 건축거리로 와이탄이라 부른다.
와이탄은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쌓은 강변둑을 말하는 것이었겠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인근거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황푸강은 상하이 사람들과 체류 외국인들이 같이 마시는 식수원이고 상하이를 드나드는 수문이지만 강폭이 500여 m에 이르러 바다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468m높이의 동방명주라고 불리는 방송타워와 더불어 빌딩 숲을 바라보면 누구든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상하이의 동방명주나 고풍스런 건물들과 역사적인 유적을 보면서 처음에는 감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건물들을 다시 보고자 하여 상하이를 재차 방문할지는 의심스럽다. 그러나 상하이에서 볼 수 있는 노천카페에서 재즈나 라틴음악을 즐겼다면 그것을 다시 음미하기 위하여 상하이를 찾을 것이다. 상하이에는 세계각국의 사람들과 문화가 어우러지고 있으며 풍부한 성량의 라틴계 음악가가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을 감상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감동은 상하이를 방문했던 사람들을 다시 부를 것이다. 이것이 문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상하이에 와이탄이 있다면 제주에는 산지천이 있다. 제주도가 매력 있는 문화관광도시가 되려면 음악과 시가 좀더 풍부하게 흘러야 할 것이다. 산지천에는 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시도 함께 흐른다. 산지포구에서 낚시하는 모습은 예로부터 ‘산포조어'라 하여 영주10경중 하나로 유명하였다.
산지천을 옛 모습으로 2002년에 복원한 후에는 시민들의 정서를 함양하는 문화적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2004년부터 매월 첫째 금요일에 시낭송회를 열고 있는 제주시사랑회(회장 김정희)가 2007년 1월 5일 오후 8시 중국피난선 해상호에서 제27회 정기시낭송회 ‘시가 흐르는 산지천의 금요일?? 행사를 했다. 2007년을 시작하면서 제주시사랑회에서는 새벽을 여는 시낭송회를 가졌는데 2부 행사에서 첫 번째로 낭송된 양금희(제주문인협회회원)시인의 시 '하늘타리와 달팽이'는 청중들에게 고난에 좌절하지 않고 은근함과 끈기로 새해를 맞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 했다.
하늘타리와 달팽이 /양금희 /하늘타리 /유리창에 비친 모습 /내가 훔쳐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방범창을 오르고 있다. /비를 피해 숨어든 /하늘타리 밑 달팽이 /눈앞에서 /줄기를 오르고 있다. /그들의 느린 속도보다 /세월은 빨리 흐르지만 /세상을 향한 아우성은 없네. /세찬 비에 잘린 손 /그나마 위태한데 /쓰러진 몸 추슬러 /방범창을 오를 것이다. /그 아래 달팽이 /새의 눈에만 띄지 않는다면 /줄기를 오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일마다 잘되고 건강하며 재물과 부와 명성이 풍족하다면 어려운 사람들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실패하고 좌절한 사람들, 병으로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을까? 바람과 비를 맞지 않고 자라난 하늘타리는 거의 없을 것이다. 자연은 시련에 묵묵히 참고 견디며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열매를 맺는다. 지금도 가끔 산과 들에서 나무에 매달린 노란 하늘타리 열매를 발견하곤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좌절하지 말고 은근한 끈기로 살아나가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시인은 일깨워주고 있다.
세상의 재화는 한정적이라서 많은 사람이 모두 향유할 수가 없지만 시와 음악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그 감동을 공유할 수 있다. 새해에는 제주도에 좀 더 많은 시와 음악이 울려 퍼졌으면 한다. 시와 음악이 흐르는 산지천을 보면서 다시 한번 제주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강 병 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