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우리의 대화

2006-11-01     제주타임스

사람이 사람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길은 대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생각해 볼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가 없이는 생활을 영위해 나아갈 수 없다”(카뮈)고 말하는 것이다. 가족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대화를 상실할 때 공동성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인간은 비인간화해 버린다. 대화는 인생의 가장 훌륭한 생존 수단이며, 마음의 즐거운 향연이다.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죽음에 이르는 길에서 벗어나며, 가슴 속에 응어리진 상처를 치유한다. 서로의 사랑과 연민을 나누는 것도 대화로 이루어졌으며, 벼락치는 전투를 종식시키고 평화를 일궈내는 데도 대화가 중요한 몫을 차지하였다. “말하기를 적게 하고 듣기를 많이 하기 위하여,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두 개”라는 유머가 있다. 그리하여 대화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들어주기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출발이다. 이런 태도에서 우리의 사랑은 지속되고 영글어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어 준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것은 힘겨운 인내와 절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야기를 듣는 쪽보다 하는 쪽을 더 좋아하는 속성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즐거운 향연으로 시작된 대화가 증오의 화염으로 끝나는 일이 종종 있다. 불행하게 단련된 우리의 속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들을 귀가 없는 말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무슨 회의에서도 발언자들이 자기의 주장을 외쳐대기에만 열을 올린다. 매일매일 발표되는 무슨 집단 대변자의 성명을 보면 이것은 얼른 수긍될 것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나오는 말들을 들으면서 이해나 애정을 느낄 수가 없다.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보다 해변의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아내는 일이 훨씬 쉬울 것이다. 그들의 말 속에는 증오와 저주, 상대방에 대한 부정과 말살의 용어들만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내뱉는 말의 영향에 대해서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회초리로 때리는 것은 살갗에 흔적을 만들지만 말로 치는 것은 뼈를 부서지게 한다. 많은 사람이 칼날에 죽어갔지만, 말에 의해서 쓰러진 사람처럼 그렇게 많지 않다.”(구약성경) 한 사람이 입으로 나와서 천 사람의 저로 들어갈 수 있는 말이 때로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생명을 말살하기도 하는 것이다. 안정과 조화의 씨를 뿌릴 수 있는 언어가 불안과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악의에 찬 말, 거짓 증언하는 말, 중상하는 말이 끼치는 피해는 우리의 일상적인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은 활화산 같은 위험을 지니고 우리의 주위를 맴돈다. 언제 화염을 뿜어 우리를 덮쳐 버릴지 알 수 없는 것이 그 말이 지닌 실상이다. 그리고 어린 말을 마구 쏟아내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인간의 한계성이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오만이요 나약함이며, 마침내 자기를 옭아매는 우둔함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오늘의 현실은 모두가 말을 쏟아내는 데만 열중할 뿐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역설에 익숙해져 버렸다. 이제 우리는 두 개의 귀를 이용하여 상대방의 말을 듣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듣는 데서 아름다운 이해와 사랑의 꽃은 피어난다. 듣는 귀를 열어야 활력의 문은 열린다. 들어주기의 즐거움과 보람을 찾을 때, 대화 속에 하나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 관계에서 우리는 고독과 비애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된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