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혐의로"

아버지와 아들 차례로 선고재판 법정에 서

2006-10-18     김광호
18일 오전 10시 20분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 50대 아버지와 10대 아들이 죄를 져 차례로 형을 선고받는 좀처럼 보기드문 재판이 열렸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법정에서, 같은 혐의(강간 등)로 아버지와 아
들이 함께 재판을 받는 이례적인 법정 모습에 방청객들도 숨을 죽이고
재판장의 판결문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법정에 선 아버지 A씨(58)는 2000년 10월부터 지난 1월까지 제주
시 자신의 집에서 4차례에 걸쳐 며느리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해 성폭력
범죄(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재판을 받았다.
또, 아들 A군(17)은 지난 8월28일 오후 8시30분께 제주시 구좌읍내 농
로에서 집으로 가는 20대 여성(22)을 오토바이로 집까지 데려다 주겠
다며 인근 밭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고 도주했다가 강간 등 혐의로 검
거,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이들 부자를 차례로 불러 형을 선고하는 제2형사부 재판장 고충정 수
석부장판사의 목소리도 어처구니 없는 딱한 공판을 해야 하는 부담때
문인지 약간 떨리는 듯했다.
결국 재판부는 아버지 A씨에 대해 징역 2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
했다. 또, 아들 A군에 대해선 소년부에 송치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날 재판에서 같은 내용의
범행으로 선고를 받는다"며 "고민 끝에 아들은 소년부에 송치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아버지 A씨에게 "아들(22)과 결혼해서 자식까지 있는 며느리
를 한 두 번도 아니고, 이렇게 성폭행할 수가 있느냐.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재혼한 피해자(며느리)가 처벌을 원치 않고 있지만, 그 충격으
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며 "처벌할 수 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아들 A군에게 "어떻게 할까 근심하다 기회를 주기위해
교도소에서 소년부로 송치한다"며 "한 번 더 그런 범행을 하면 큰 일
난다"고 각별한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이날 이들 부자의 공판을 지켜 본 한 방청객은 "미성년자인 아들이야
한 번의 실수가 그렇게 됐다고 볼 수 있지만,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아버지는 죄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며 "다시는 우리 주변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