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1992년 2월 평양
최근 북한의 핵 실험을 보면서 1992년 2월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 고위급(총리) 회담에 취재 기자로 참가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제주신문에 근무했던 필자는 이 해 2월18일 정원식 총리를 비롯한 남측 회담대표단 및 수행원과 함께 취재 기자단의 일원으로 판문점을 거쳐 평양에 갔다. 평양에 3박4일 간 체류하면서 역사적인 남북 고위급 회담의 현장을 지켜봤으며, 평양 시내를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당시로선 남북 분단 이후 가장 비중 있는 회담이었고, 이 회담을 취재할 수 있었던 필자 역시 큰 행운이었다. 강산이 한 번 반이나 변했을 15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평양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은 북한이 얼마 전에 전 세계의 우려 속에 지하 핵 실험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남북은 평양 회담에서 남북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우리측 정원식 총리와 최근 사망한 북한의 연형묵 총리는 2월19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전 세계에 실천을 선언했다. 2월의 평양 날씨는 매서웠다. 마침 평양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의 날씨였지만, 북쪽 땅은 말 그대로 동토였다.
회담 대표단과 기자단의 숙소인 백화원초대소 정원의 큰 호수도 꽁꽁 얼어 붙어있었다. 그러나 민족 간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려는 남북 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은 이 정도의 추위 쯤 대수가 아니었다. 곧 남북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상호 협력의 시대와 핵 없는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하면 몸은 추워도 마음은 오히려 따뜻했다.
지금, 그러한 희망은 꿈이 되고 말았다. 이 선언의 정신이 어느 정도 지켜진 것은 교류협력 정도에 불과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 남북 정상회담으로 상호 화해의 물꼬가 트이는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교류협력은 사실상 상호 협력이 아닌 우리측의 퍼주기식 일방적 협력으로 일관해 왔다. 결국 북측은 남측의 돈과 물자만 받아 챙겼다. 부자 형이 가난한 동생을 도와주듯이, 잘 사는 남한이 못 사는 북한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도움은 받으면서 행패를 부리고, 이웃에까지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비핵화 선언을 철석같이 해 놓고 핵 실험을 한 북한의 두 얼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북한은 미국의 위협때문에 핵 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핵을 보유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이미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을 한 이상 핵 포기를 전제로 세계 평화국의 일원으로 동참하겠다고 떳떳이 나섰다면 미국도 대북 대화에 나섰을 것이다.
또, 지금 쯤 남북 합의서와 비핵화 공동 선언도 결실을 봤을 것이다. 솔직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짝사랑적인 대북 정책이 북한의 오만을 키운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그 동안 북한은 남한 정부가 준 돈으로 군부를 지원하고, 핵 실험 자금으로 이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더 이상의 무모한 경제지원은 곤란하다. 핵 무기와 대량 살상 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남북 합의서의 이행을 전제로 국제 무대에 나설 때에만 경제지원을 해야 한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미국의 선제공격만은 막아야 한다.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는 효과는 거둘지 몰라도 남한의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물리적 제재, 즉 선제공격을 제외한 경제분야 제재로 채택됐다니 다행이다. 6자 회담에 나오도록 하면서 북한 선박의 해상 통제도 살상무기의 수출을 막는 선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시 강력한 경제제재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경제제재까지 흐지부지 된다면 북한은 다시 핵 실험을 하려 할 것이고, 결국 핵 보유국의 대열에 진입하는 원치 않은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정부도 뒤늦게나마 핵을 선택한 북한의 의도를 확인한 이상 분별없이 북한을 두둔해선 안 될 것이다. 핵을 포기해야 줄 것은 주겠다는 초강경 자세를 보여야 한다. 15년 전의 평양 비핵화 공동 선언은 이미 휴지쪽지가 돼 버렸다.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보며 가슴 설레였던 기자의 마음도 아프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든다고 했다.
한ㆍ미ㆍ일ㆍ중ㆍ러 등 국제사회의 협조 아래 또 다시 우리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을 유도하는 방법은 남아 있다. 물론 막대한 경제지원이 전제조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가 전적으로 보장된다면 마다할 일이 아니다. 그것이 임기를 16개월 앞둔 노무현 정부에 부여된 최대 과제이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