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재판부의 경고, 이상한 벌금?
정갑주 광주고법 제주부 재판장(제주지방법원장)이 최근 제주도의원과 한나라당 관계자의 선거법 위반 판결을 하면서 폭로한 내용이 ‘생명력’을 갖고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정 법원장은 판결을 앞두고 일부 피의자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자기에게 형량을 낮춰주도록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제주에 부임한지 얼마 안돼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만 앞으론 ‘본 때’를 보이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괘씸죄’를 적용, 형량을 결정하려 했으나, 사안 자체만을 엄격히 보고 판결을 내렸다고도 했다. 도의원에겐 90만원씩의 벌금을 선고, 의원직 상실 형량(100만원)을 가까스로 벗어나, 오랫동안 간이 콩알만큼 했던 도의원과 정치인은 가슴을 펴게됐다. 필자가 과문한 탓일까. 보통 선거법 위반 벌금 판결을 내릴 때 벌금 80만원이나 50만원, 70만원을 선고해 직위를 유지토록 해준 경우는 자주 봤으나, 90만원으로 결정한 사례는 거의 들은 일 없다. 벌금이 100만원이면 100만원이거나, 아니면 80만원이나 70만원 또는 50만원이지, 90만원 벌금은 아리송하다. 경겵떻?부조금 낼 경우 보통 3만원, 5만원, 10만원을 내지, 4만원이나 9만원을 봉투에 넣지 않는다. 이번 벌금은 부조금 4만원이나 9만원을 보는 것 같다. 법이 ‘최소한의 상식 내지 사회상규(社會常規)’이고 보면, 이번 벌금은 마치 생선장수와 구매자가 흥정을 벌여 나온 금액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낳는다. 법원장의 지적은 제주사회의 뿌리깊은 지역 연고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다음 재판에 청탁을 배제하기 위한 충정임을 이해한다. 그런데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는 법원장으로 부임한 지난 8월말 선거사범 엄단방침을 밝혔다. 이 때문에 이번 형량도 꽤 무겁게 나올 것이란 여론이 우세했다. 그래서일까. 법원장이 ‘솜방망이’ 처벌이란 도민 여론을 모면하기 위해 미리 선수 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법조계 일각에서 만만치 않다. 변호사가 벌금을 깎아달라고 법관에게 부탁하면 로비가 아니요, 일반인이 재판부나 재판부를 아는 사람을 통해 부탁하면 로비(청탁)인가? 변호사가 법관에게 부탁하는 일은 로맨스지만, 일반인이 하면 스캔들인가? 법원장의 지적이 잘 작동하려면 우선 재판부가 깨끗하고 국민 신뢰성이 담보돼야 한다. 사법부는 신성해 범접하지 못할 곳이란 인식이 사회 구성원 전반에 깔려있어야 한다. 전 차관급인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거액의 뇌물을 먹어 영어의 몸이 되는 요즘 판에 사법부를 신뢰할 백성이 얼마나 될꼬? 민사재판을 할 때 재판장이 원고나 피고 당사자를 하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반말을 쓰는 사례가 아직도 횡행하는 세상에 누가 판사를 신성시할 것인가. 원곀품恣?열심히 자기주장을 늘어놓으려면 “예, 아니오”로만 말하라며 귀찮다는 듯 말문을 끊어버리는 것이 요즘 법정에서도 흔한 풍경이다. 원래 소송을 통해 이뤄지는 재판인 경우 법원엔 공짜가 없다. 원고곀품炙?이해당사자가 법원에 돈을 내고 (인지대금으로)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를 제 3자인 국가 공인기관인 재판부가 가려주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재판이다. 원고가 낸 인지대금은 대개 법원수입으로 돌아간다. 사법부는 주로 이런 수입으로 청사를 짓고, 사법부 공무원 월급도 준다. 따라서 법원은 원고. 피고 당사자에게 고마운 맘을 가져야 한다. 이런 ‘법원 소비자’ ‘법원 고객’에게 재판부가 예의와 법도로 심리를 진행해야 하는 소이(所以)가 여기에 있는 게다. 유전유죄, 무전무죄의 법 감정이 일반화된 터에 법원장의 엄중 경고는 단순히 인기발언 또는 자기과시나 변명의 메아리로 들리는 건 웬 일일까. 재판에 사족은 없다는 게 좋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검사는 공소장으로, 기자는 기사로 각각 말할 뿐이다.
임 창 준 (편집부국장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