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칼럼] 박지성의 三治
영국의 축구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 한국의 박지성에게 가장 듣기 싫어하는 질문이 있다. “왜 잘 넘어지느냐”는 것이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 듣기 싫은 질문에 답한 적이 있다. 잘 넘어지는 이유는 세 가지였다. “걸리기 때문이다. 다치지 않기 위해서다. 파울을 피하려는 것이다”라는 것. 이것이 바로 자신과, 소속팀과, 더 나아가 조국의 명예를 위한 그의 삼치(三治)요, 순리다. 걸리면 아예 넘어져버려야 상대의 반칙을 얻어낸다. 괜한 과욕으로 안 넘어지려다 경기만 망칠 수 있다. 다치지 않기 위해 넘어지는 이유도 그렇다.
넘어져야 할 때 순리를 거역해서 넘어지지 않고 무모하게 덤비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자신은 물론, 팀 전력에 문제가 생긴다. 반칙을 피하기 위해 넘어지는 것도 경기를 이기기 위함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는 반칙을 크게 범해 퇴장을 당할 수도 있고, 경고를 받을 수도 있다. 걸리면 넘어지고, 다치지 않으려 넘어지고, 반칙 않으려 넘어지고 끝 없이 넘어지는 박지성의 이 삼치(三治)야말로 그의 축구철학이요, 인생철학인 셈이다. 우리의 높고 낮은 국가 경영 담당자들도 박지성의 축구철학, 인생철학을 본 받았으면 한다. 걸리면 넘어질 줄 아는 그런 순리, 그런 자세 말이다.
사실 조국 광복 이후 우리의 역대 크고 작은 국가경영자들이 걸림돌에 채였음에도 불구하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굴러들어 온 더 큰 바위덩이를 만나 자신을 망치고, 국가를 위기로 몰아 넣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그랬다. 헌법에 박혀 있는 4선(選) 금지 걸림돌에 발끝이 채였지만 넘어지지 않으려고 개헌을 해서 3.15부정선거를 저질렀다가 4.19혁명이라는 큰 바위덩이가 굴러와 그를 하와이로 쫓겨버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어떤가. 그는 군사혁명공약에 자신의 걸림돌을 박아 둔 상태였다. 혁명임무를 완수하면 군으로 원대 복귀하겠다는 공약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걸림돌에 넘어지지 않았고, 민정(民政) 참여로 대통령이 된 후 역시 스스로 마련한 헌법상의 여러 걸림돌에도 넘어지려 하지 않았다. 아니 끝내 유신 헌법을 만들어 걸림돌 자체를 제거해버리고 넘어지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하지만 찾아 온 것은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성이라는 너무나 엄청난 바위덩어리였다. 어디 이들 대통령들뿐인가. 일부 장관-국회의원-재벌-법조인들 중에도 뇌물-선거법 위반-인사비리 등 각종 걸림돌에 걸렸음에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요동을 치다가 스스로 망신을 당하고 국가와 사회에 누만 끼치는 꼴이 된 적이 있다. 만약 이들 대통령을 포함한 정-관-재계 인사들이 걸림돌에 걸렸을 때 야인으로 돌아가든지, 고해성사를 해서 깨끗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제 할 일을 찾았다면 우리 나라의 역사는 분명코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넘어질수록 건재하는 박지성처럼 말이다. 8월 초순 김병준 교육부총리도 걸림돌에 걸렸으나 넘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의 걸림돌은 ‘제자 논문 표절’과 ‘논문 중복 개재’ 및 ‘연구비 이중 수령’ 등이었다. 당시 김 교육부총리는 걸림돌을 만나자마자 재빨리 넘어져 때를 기다리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넘어지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다보니 학계-교육계-국회에까지 누를 끼치게 되었고 자신의 상처만 더욱 키운 꼴이 되었다. 요즈음도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걸림돌이 하나 툭 튀어 나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이른바 성인 오락실의 ‘바다 이야기’- 떠도는 얘기로는 이미 구속된 사업자 외에도 정-관계 실세 여럿이 이 걸림돌에 걸려 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빨리 넘어지는 게 상책이다. 그럼에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면 그 모습이 매우 볼만할 것이다. 볼만할수록 국위는 떨어지고, 국민들의 마음은 아프다. 덫에 걸린 여우는 발을 빼려하면 할수록 상처만 더 깊어져 결국 다리를 잘라 내야 한다. 걸렸으면 박지성처럼 멋지게 넘어져라. 그것이 잘못을 저지른 가운데서도 자신을 위함이요, 국가의 힘의 소진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어서 넘어져라.
김 경 호 (상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