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작전권(作戰權)

2006-08-16     제주타임스

요즘 최대의 화두는 뭐니 뭐니 해도 ‘전시작전권 환수’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국력 소모이자 국론 분열일 뿐이다. 당연히 되돌려 받아야 할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작전권 환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실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러나 이는 민주독립국가로서의 주권에 해당하는 사안이고, 국민 자존심에 관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의 작전권이 우리 국군에 의해 단독 행사되지 못하고 있는가부터 알아야 할 터이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지 한 달이 채 안된 이 해 7월, 이승만대통령은 피난지 대전에서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한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을 이양하고 만다. 불법 남침한 북한군에 밀려 대전까지 내려간 당시 정부에게 있어, 유엔군은 분명 ‘구세군’에 다름 아니었다. 전투수행 능력이나 병력 수(數) 그리고 무기 등 모든 면에서 열악했던 우리로서는 막다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직제에도 없이 급조된 육곀?공 3군 합동사령관은 겨우 30대 초반의 젊은 장군이었다.

이러한 형편에서 불안 초조에 휩싸였던 이(李)대통령은 전격적으로 군사 작전권을 넘겨주고 만 것이다. 국가 주권의 한 부분을 포기했다는 아픔은 있었으나 국력이 빈약하고 독자적인 방위력이 크게 미흡했던 시절에 이루어진 일인지라, 그런대로 감수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인 1994년 12월, 마침내 우리나라는 작전권 중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평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할 수 있었다.

이때 우리 언론은 ‘44년만의 군사주권 회복’이라고 기뻐하면서 ‘한반도 방위『한국 주도』구체화’라며 대서특필하였다. 이에 더하여 국방부 발행 ‘국방소식’(1995. 2. 20)은 “이로써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독립 주권국가로서의 위상과 국민적 자긍심을 제고(提高)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남북 간 군사회담 시 우리의 대북 입지를 강화하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처럼 작전권을 ‘되찾는 일’은 전 국민적 염원이었던 것이다. 1994년이면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기 아닌가. 당시 김대통령은 “제2의 창군에 해당되는 쾌거”라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그 이전 노태우 대통령 때도, 아니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도 ‘자주국방’을 외치며 국산 미사일 개발과 함께 내심 작전권 이양을 바라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며 시비를 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물론 귀 기울여야 한다. 작전권을 단독으로 수행하는데는 많은 난관이 있음을 안다. 정보수집능력?무기체계(특히 비대칭 무기-상대방의 취약점을 노려 한방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핵과 같은 압도적 무기) ?천문학적인 군사비 부담, 그리고 한ㆍ미간의 갈등과 마찰 등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논쟁으로 시간만 끌 일이 아니다.

그런 주장과 정력을, 예상되는 난제를 처리하는데 집중하면 좋지 않겠는가. 작전권을 환원한 뒤에 있을 모든 과제들을 차분하게 하나하나 검토하며 풀어 나갈 생각을 한다면, 일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공조체제를 보다 강화하고 공동작전ㆍ전술방안도 구축하면 된다. 미국이 작전권을 이양한다고 하여 이를 서운하게 여기고, 군대를 철수하며 지원을 중단할 그런 혈맹(血盟)우방이 아니질 않는가. 미국도 나름대로의 국익과 방위전략이 있기 까닭에, 전직 국방장관들의 기우처럼 가볍게 움직이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명분’이나 ‘자존심’만 가지고 국가안보를 논(論)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군사력의 ‘미국 의존’에서 이제쯤 벗어날 때가 충분히 되었다. 독립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자존심, 그리고 미국과의 보다 강력한 동맹과 대북(對北)우위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도 군사작전권의 환수는 절대로 필요하다.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