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소신껏 처리하라
우근민 전 지사의 무죄
갑자기 검찰이 고민에 빠졌다.
공무원 선거개입 사건과 관련해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한 사법
처리 문제를 놓고 고심해 온 제주지방검찰청이 요즘들어선 고심
의 수위를 넘어 고민하고 있다. 검찰은 "그렇지 않다"고 할지 모
르나, 기자의 판단은 그렇다.
검찰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 것은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아
온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가 지난 25일 무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
이다. 특히 검찰은 우 전 지사에게 징역 10년에 추징금 3억원을
구형했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뇌물을 받았다고 인
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검찰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양형이 생각 외로 줄어든 게 아
니라 아예 무죄 판결이 나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오히려 당황하
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검찰은 이제 이 사건을 2심 법원에 항
소하는 문제를 남겨두고 있다. 검찰이 고민하는 첫 번째 이유다.
증거재판주의는 형사소송법의 기본 원칙이다. 판사의 사실 인정은
반드시 증거능력에 의해서만 해야 한다. 다시 말해, 검찰의 증명
불능은 피고인의 이익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우 전 지사의 무
죄도 이에 해당한다.
사실 이 사건은 전직 지사와 아들까지 관련된 데다 뇌물액수가
거액(3억원)이어서 도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 본 사건이다. 그만
큼 검찰로서도 상당한 부담을 안고 이 사건을 다뤄왔다. 검찰은
사안이 사안인 만큼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 진실
을 규명하고 구겨진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항소한 뒤 증거 보강
작업을 서둘 것이다.
김태환 지사의 혐의 입증
김태환 지사를 '기소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검찰이 안고 있는 두
번째 '햄릿형 고민'이다. 굳이 경중을 따진다면 우 전 지사 문제보
다 이 문제가 더 큰 현안이다.
검찰은 지난 4월27일 도지사 비서실 압수 수색을 시작으로 공무
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 규명에 매달려 왔다. 그동안 공무원 20여
명 등을 불러 추궁한 끝에 7명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지사에 대한 사법처리 결론은 선뜻 내리지 못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세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는, 검찰이 김 지사가 공무원 선거개입에 직접 관여한 결정적
인 단서를 확보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검찰은 김 지사
를 두 차레 참고인으로 소환해 공무원 선거개입에 공모했는지, 또
는 지시, 묵인, 방조했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해 왔다. 하지만 묵
인, 방조한 사실은 밝혀냈지만, 공모, 지시한 혐의는 확인하지 못
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검찰은 "김 지사가 공무원들이 선거에 관여한 사실을 알고 있었
다는 진술은 했지만, 나머지(공모.지시)에 대해선 부인으로 일관하
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또 '심증은 가나, 물증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느낌을 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심지어 검찰 주변에서는 이 사건을 '깃털론'에
비유하는 말들도 나오고 있다. 검찰도 이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
하고 있을지 모른다.
둘째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선거개입 공무원 수사에서 김
지사가 관련된 사실을 어느 정도 확인했으나 사법처리(입건) 방침
이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다. 검찰의 고민은 우 전
지사의 무죄 선고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만약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기소했다가 또 다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이라도 났
을 때 검찰의 처지는 더 더욱 난감해질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법과 원칙대로 하면 된다
검찰은 '우 전 지사 무죄'만 아니었어도 기소까지 생각했던 게 아
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셋째는, 확증이 없는 상황에서 도민이 선
출한 도지사를 사법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검찰은 줄곧 지
역사회 속의 검찰을 강조해 왔다.
어떤 형태의 처리(불기소.기소)였건 후 폭풍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큰 폭풍보다는 작은 폭풍을 선택하려 할 것이고,
그것은 현실을 감안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이렇다 할 증거도 없이 도민이 손으로 뽑은 도지사를
법정에 서게 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다. 더구나 확실한 증거없이
기소했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또 다시 무죄 선고가 내려지기라도
할 때 검찰이 입을 자존심 훼손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요즘 제주지역 법조계의 화두는 '증거재판주의'이다. "증거가 없으
면 죄 성립이 안됩니다". 최근의 재판 분위기와 관련, 어느 판사
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어떻든 검찰은 이 사건을 소신껏 처리해야 한다. 외압에 의해서도
안되며,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다면 기소하고, 혐의가 없다면 불
기소 처분해야 한다. 이르면 오늘, 늦어도 2~3일내 발표될 검찰의
김 지사 관련 처리 결과 발표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