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뒤끝 심상찮다
선거는 끝났지만
5.31 지방선거 뒤끝이 개운치 않다. 많은 당선자와 낙선자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미 단체장에 취임했으며, 지방의회가 개원돼 본격적인 의정활동에 들어갔지만, 모든 당선자가 떳떳한 것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광역단체장 16명 가운데 11명과 기초단체장.지방의원 등 모두 260여 명이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거나, 기다리고 있다. 지금 이들의 마음은 천근만근이고, 좌불안석의 심정일 것이다. 개정된 공직선거법이 불법선거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데도 불법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때문일까. 깨끗한 선거문화가 강조되고 있지만, 우리에게 그러한 문화는 일천하다. 후보자나 유권자 모두 선거와 돈은 불가분의 관계인양 생각해 왔다. 꼭 돈 봉투를 표로 바꾸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간단한 음식과 선물 정도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왔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은 후보자로부터 식사 한번 대접받아도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것을 사실상 처음 터득했다. 이 점 이번 선거가 거둔 긍정적인 면모라 하겠다. 문제는 유권자가 아니라 후보자들에게 있다. 그나마 높아진 유권자들의 선거의식에 비해 후보자들의 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거법 위반은 공천 과정에서의 금품수수 또는 선거조직 내 금품수수 혐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선거는 축제가 아니다
특히 한나라당 공천은 당선에 가장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다. 전국적으로 공천비리가 한나라당에 집중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직자와 후보자 간 거래는 은밀해서 들통이 날 염려가 높지 않다. 이러한 점이 공천 거래를 부추겨 상승 작용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주민 고발과 선관위 고발 및 검.경의 치밀한 수사가 없으면 대부분 묻혀버릴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만약 수사기관의 의지가 취약했다면 이들 당선자들의 불법선거는 정당화하고 말았을 것이다. 흔히 선거는 축제라고 한다. 그러나 선거는 축제도 아니고, 축제가 될 수도 없다. 굳이 축제라고 한다면 불법을 저지르는 후보자들만의 얘기일 것이다. 액수야 크든 작든 공천을 돈으로 팔고, 당선까지 된다면 그들만의 축제가 아니고 무엇인가. 더 이상 ‘선거를 축제로 치르자’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선거는 양심’, ‘선거일은 양심을 심는 날’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공천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가 발 붙일 수 없고, 돈으로 표를 매수하려는 구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선거가 축제라는 말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 나왔다.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축제 분위기 속에 치러진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석유자금이, 누구에게는 무기업체의 자금이 흘러들어갔다는 등 정치자금 스캔들이 자주 등장하면서 미국 대통령 선거의 축제 분위기도 많이 퇘색됐다. 선거는 그저 국가 또는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할 깨끗한 일꾼을 뽑는 행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선거사범 처리, 엄격해야
이번 제주지역 지방선거 역시 공천을 둘러싼 금품비리와 공무원 선거개입 및 선거기획으로 큰 오점을 남겼다. 한나라당 도의원 공천 과정에서의 금품수수 혐의 등으로 당선자 4명 등 10여 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도의원 3명이 당선 무효 형에 해당하는 1심 형량(벌금) 및 검찰 구형(벌금)을 받아 항소심 또는 1심 선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원 역시 선거사범에 대해 엄격히 판단하는 추세다. 이들에 대한 지법 및 항소할 경우 고법과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당사자는 물론 도민들로서도 지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 뿐 만이 아니다. 제주도청 공무원 7명과 민간인 1명이 김태환 도지사 선거개입 및 선거기획 관여 혐의로 사법처리될 상황에 놓여 있다. 검찰은 공무원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고, 김 지사에 대한 공무원 선거개입 관여 및 공모 혐의에 대한 조사를 이번 주 중에 벌인다는 계획이다. 검찰이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어 예단은 곤란하지만, “심각한 수준의 선거기획이 있었다”는 언급은 주목할 대목이다. 사안의 비중을 예측할수 있게 하는 말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연한 말이다. 없는 사실을 부풀려서도 안되고, 있는 사실을 축소해서도 안된다. 지금 도민들의 눈과 귀는 과연 검찰이 사실 그대로 수사하고, 사실 그대로 법의 잣대를 들이 댈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법과 원칙은 해당 사건의 엄격한 처벌도 처벌이지만, 다시는 유사한 불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말 그대로 준엄하고 투명하게 적용돼야 한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