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설립동기와 걸어온 길
본도는 지리적 위치상 외국무역중계요충지로서 상업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으나 본도에서는 상업교육시설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내 상공업지 입지조건으로 검토할 때 상업지로는 애월지역, 공업지로는 한림지역이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당시 애월지역 주민들은 고등학교 설립에 대한 열의로 가득 차 있었고 요로에 고등학교설립의 필요성을 진정하여 기 설치된 중학교와 병설로 상업고등학교를 설치인가를 건의하게 됨으로써, 제주도교육청이 이를 받아들여 1953년 4월 25일 상학과 6학급인가로 개교하게 되었다.
개교 당시 애월상고는 물적·인적 교육환경이 이만저만 열악한 게 아니었다. 독립된 시설이나 교직원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으며, 중학교와 더불어 운영되는 그야말로 남의 집에 빌붙어 사는 격이었다. 중학교 역시 초창기이고 6·25전쟁 와중이라 시설이 빈약했을 뿐만 아니라 교실마저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었다. 교실 난으로 학생들을 애월리 구 향사와 애월면 사무소 회의실 등에 분산 수용하면서 전전하다가, 개교 3년 후인 1956년도에 중학교 구내인 해망동산으로 들어왔으나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기 전까지 30여 년 동안 줄 곧 고난의 터전이었다. 학생들은 학교 북쪽 바닷가 가시덤불에서 등짐으로 돌을 져 나르며 화단을 꾸미기도 하고 운동장을 고르고 다졌다.
1972년 3월 중·고등학교가 분리되면서 중학교가 학교울타리 서쪽에 있는 애월초등학교 실습부지로 이전함에 따라 중학교 학교건물을 포함한 시설 일체를 인수하면서 학교사정이 다소 나아지긴 했다.
이 때부터 학교는 성장발전을 지속하게 되었고 학급수가 18학급으로 증가되고 학생 수도 850명을 넘어서면서 고등학교의 시설로서는 부지면적과 교실이 절대 부족하여 교육활동의 제약이 매우 심각하게 발생하여 학교 이설을 추진하게 된다.
▲애월상고의 성장발전과 학교 이설
애월상업고등학교는 설립 당시 학급당 2학급 인가로 시작되었지만 학생수는 언제나 부족하여 제19회 졸업생(1973.2.5)까지는 100명을 넘기지 못하는 영세학교를 면치 못하였다.
1974학년도에 신입생 3학급 인가를 받았으나, 입학정원이 늘 모자라 학교의 명예는 물론 학교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었다. 학교당국은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지역사회의 저항을 받으면서도 신입생 전형을 후기로 돌려놓게 되자, 79학년도에는 지원자 70명이 떨어지는 도내 고등학교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5학급 인가를 받아내었고 이듬해인 80년도에는 6학급 인가를 받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영세학교의 불명예를 벋어나 학생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는 당시 신용준 교장이 신입생 확보를 위한 고육지책이 성공사례로서 교육현장을 읽는 정확한 판단력의 결과였다.
학생수가 늘어나게 되면서 1982년 이설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애월리 김관진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학교이설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고내리에서는 홍영범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학교부지 매입·정지추진위원회가 결성되면서 이설사업에 속도가 붙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재일교포 고내리 친목회장인 양재종씨 등 10명으로부터 1억원의 기금을 희사 받아 1983년 6월 애월읍 고내리 800-1번지 일대 33필지 36,344평방미터의 부지를 매입, 학교신축에 착수하여 이듬해 5월12일 준공을 보게 됨으로써 학교 이설 준비를 완료하게 된다.
학교 이설까지 30회에 걸쳐 졸업생 3,033명을 배출한 해망동산을 뒤로하고 1984년 5월 18일, 현재의 고내봉 서편기슭 속칭 곰배머루라는 곳으로 이설을 하게 되었다. 학교 이설 후 2006년 2월 졸업생을 포함하여 22회에 걸쳐 5195명을 배출하여 총 52회 졸업동문 8,228명을 배출한 읍면지역의 명문학교로 자리 잡고 있다.
▲학교의 자랑과 교기인 정구
개교 당시 애월상업고등학교로 출발한 학교는 1983년 상학과 9학급에 보통과 6학급을 인가받아 애월종합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가, 1993년 다사 애월상업고등학교로 환원되면서 보통과가 정보처리과로 바뀌었다. 현재는 정보처리과와 경영정보과 각 9학급씩 18학급이다.
애월상업고등학교는 지방 실업계고등학교이면서도 취업은 물론 많은 대학에 진학하여 졸업 후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국내 최고 명문인 서울대학교에 4명이나 입학했고, 예비고사 전국 17등을 배출하여 문교부에서도 놀라 제주도 교육청에 ‘애월상고가 어떤 학교냐?’고 문의할 정도로 실력 있는 우수 학생을 많이 배출한 지방 명문학교이다.
애월상업고등학교는 학력에서 뿐만 아니라 복싱, 유도, 육상, 수영, 태니스(연식정구포함) 등에서 각종 도 내·외 대회에 참가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교기인 정구하면 애월상고를 떠올릴 정도로 각종대회를 석권하면서 정구의 명문학교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1962년도 전도학생종합체육대회 정구 우승을 시작으로 30여회에 걸쳐 우승을 독차지한 저력 있는 학교임을 자랑하고 있으며, 1985년도에는 체육교육우수학교로 체육부장관 표창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총동창회와 관할 교육청이 지원이 덕택이 한 몫 했다. 대운동장 외에 정구부를 육성하기 위한 정구장 조성을 위해 총동창회(회장 백원홍)에서는 1991년 학교관리사 동편 구릉을 중장비를 동원하고 막대한 양의 흙을 투입하여 정구장 2면을 조성하였고, 1997년에는 북제주군 교육청 지원사업으로 정구장 2면을 신설하여 정구 명문 고등학교로의 걸맞은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애월상고는 2003년 2월 제주도교육청이 평가하는 실업계 고등학교 13개 영역평가에서 ‘재학력 갖추기, 외국어 구사능력, ICT활용교육, 인성교육, 토론문화정착, 특색사업, 직업교육, 교육수요자만족도’ 등 8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여 최우수학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애월상고는 교목으로 ‘창송(蒼松)’을 지정하여 1978년 동문소식지 ‘창송 창간호’를 발간 시작으로 1994년도까지 발간 해 오다가 1996년도 재 창간하여 해마다 발간해 오고 있으며, 2004년 12월에는 8천여 총 동문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제1회 창송인체육대회’를 개최(총동창회장 8회 강창식)하여 동문의 단합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향후 애월상고의 진로는 2007학년도 신입생부터 일반계열 3학급과 멀티미디어과 3학급으로 학과개편을 제주도교육청에 승인 신청 중에 있으며, 졸업생의 96%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감안하여 교명을 ‘애월고등학교로’ 변경 추진 중에 있다. 일반계 고등학교로 탈바꿈을 시도하며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는 애월상업고등학교의 장도가 주목되고 있다.
강 선 종 (기획실장/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