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한국 속담) 우리는 가장 미천하고 나약한 대상을 지렁이에 비유한다.
그런 존재는 아무렇게나 짓밟아 버려도 문제 될 게 없다고 간주된다.
꿈틀거리며 죽어가는 지렁이는 쓰레기 더미에 묻히면 그만인 것이다.
연약한 존재가 무너지는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얼굴에 도색을 칠한 서커스단의 두목처럼 웃음을 띄었다. 꿈틀거리는 몸짓이 생명력의 발로라는 사실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이 없었다.
해와 하늘빛이민망해서 땅 속으로 기어드는 미물은 사실 우리의 관심사가 될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잔인하게 느껴지는 속담을 만들어 그것을 즐겨왔다. 과연 지렁이는 모든 생물들가운데서 가장 추잡하고 불필요한 존재일 것인가?
2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농림부는 우리 나라 가축 목록에 지렁이를 포함시켰다.
지렁이로 소득을 올리는 농가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축산업의 대상에오르게 된 것이다. 소나 돼지는 배설물로 하천을 오염시키지만, 지렁이는 산업 폐기물을죄다 먹어치울 뿐만 아니라 산성으로 신음하는 땅을 중화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지렁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다.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가 흙을 파올리는 것이다.
이 미물이 누비고 지나간 자리로 공기와 습기가 스며들어 땅이 생명을 지니고 숨을 쉬게 만들어낸다. 그리고 지렁이가 배설하는 분비물은 땅을 중화시킬 뿐만 아니라 양질의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특히 여인들이 날마다 정성을 들이면서 사용하는 립스틱의 원료가 된다는 것이다.
지렁이는 땅에 떨어진 씨앗을 흙으로 덮어 주고, 그 뿌리의 언저리에 흙을 갈아서 잘 자라도록 돕는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텃밭이나 하수구에 뜨거운 물을 버리지 못하게 했다. 이는 땅 속에 살고 있는 지렁이를 지키려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이 꿈틀거리는 버러지를 짓밟아 버리는 데만 익숙해져 버렸다.
“모든 인간의 모습은 물독 속의 벌레에 지나지 않는다.”(장자) 눈부신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내면서 풍료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인간이 파리나 지렁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곧장 알아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벌레들이 한정된 시간 안에서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인간 또한 저마다 어느 만큼의 슬픈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벌레나 다름없이 한정된 시간에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영구히 지배할 수 있다는 망상에사로잡힌다.
그리고 그 슬픈 망상의 정점에는 극단적인 오만과 이기주의가 도사리고있다.
그로 인해 무분별하게 파괴당하는 대자연의 한 모퉁이에서 지렁이는 꿈틀거리며죽어간다.
그러나 대지가 숨을 거두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오만에 짓밟힌 것보다 훨씬 많은 지렁이들이 그 속에서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기때문이다. 고달픈 세상살이에서 허위와 교만에 짓밟히면서도 지렁이처럼 묵묵히 일하는이들을 생각한다.
모든 피조물은 형제로 바라보며 생명을 찬양하는 코러스를 만들어내는
이웃들과 함께 우리는 삶의 환희를 체험한다. 이 때 우리는 자연과 피조물에 봉사하는것이 성숙된 생명의 연장임을 느끼는 것이다.
장마철에 빗물을 타고 땅 위로 기어나온 지렁이를 바라본다. 우리의 대지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는 혼신의 힘으로 꿈틀대면서 땅과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