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과 인간

2006-06-14     제주타임스

주택은 사람이 살 수 있게 지은 집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고 자는 행위 등의  필요한 조건을 채우기 위한 장소가 필요하다.
특히 외계로부터의 무방비 상태인 취침 행위와 의복만으로 조절할 수 없는 심한 더위·추위로부터 몸을 지켜줄 주거공간이 필요하다.   
국제연합이 세계 무주택자의 해로 선언한 이후, 집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모두의 양심을 일깨워 개인이든 사회든 부정적인 결과를 끼치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주택난은 도시 집중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주택이 없거나 불량한 주택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택난은 글자 그대로 생존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주택난이 해결되지 못하는 사회는 인간의 발전이 이룩되지 못한 사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자기와 자기 가족이 함께 살집을 마련할 때조차도, 그 집을 사기도 전에 나중에 그 집을 팔 궁리를 하고, 또 거간꾼은 그 집을 사면 어떤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부추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이란 언제나 팔 수 있고, 살 수 있다고 오해한다. 내 집은 내 영혼과 내 가족의 영혼이 쉬는 곳이다. 그러므로 집은 투기수단도 투자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집 판돈으로 장사해서 망하지 않은 놈 없다”는 말도 있다.
광복이 되고 인구가 급증하자 도시에는 판자촌과 천막촌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후, 외국에서 원조를 받은 건축자재로 주택건설이 크게 활기를 띠면서 방에 온돌을 깔았고, 거실과 식당을 한 공간에 두는 방식이 유행하였다.
콘크리트·시멘트·벽돌 등으로, 지붕은 목조 트러스에 기와나 슬레이트를 덮기도 하였다. 1962년 주택공사에서 450세대의 마포아파트를 건립하면서 대단위 주거형태가 처음으로 형성되기도 하였다.
도시의 위기는 주택의 위기이다. 집의 위기는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 80년대 후반에는 전국철거민협회가 조직되었다.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와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헌법조문에 비추어 출발한 시민단체다.
각종개발로 대책 없이 쫓겨나는 철거민들의 권익을 찾기 위해 시민자구운동을 시작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주거권과 생존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생텍쥐페리는 “인간이 산다는 것은 그 인간의 집의 의미에 따라서 변화한다는 위대한 진리를 나는 발견했다”고 술회하고, “ 어느 집이나 지금 다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사람은 자기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
집이란 갓난아기에게 엄마의 품과 같은 곳이다. 그러나  오늘날 주택단지에는 시멘트와 철근을 넣어 만든 상자를 일직선으로 나열하거나 수직으로 높이 쌓아 올리고 있다. 집들은 강제수용소나 포로수용소를 바로 연상시킨다.
고층빌딩은 강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얼어붙은 것 같은 차가움과 살벌함은 금방 사람의 목을 조를 것만 같다. 집은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기능주의적이며 비인간적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그렇다.
내 영혼이 쉬는 곳이 바로 내 집이다. 유럽에서는 이름난 사람이 살던 집은 영구 보존한다. 
베토벤이나 슈바이처나 에스페란토가 몇 달 산 적이 있는 집을 기념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 집에서 위대한 정신이 싹텄기 때문이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