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자들을 위한 변명
역사는 승자만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2등도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역사에는 끝까지 열심을 다했던 아름다운 꼴찌도 기록된다고 했다.
독일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도 ‘위대한 패배자’라는 그의 책에서 “역사는 승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승자의 화려한 이야기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패자의 모습, 패자가 안고 있는 인간적 고뇌와 아픔, 그러나 좌절과 소외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는 끈질긴 도전의식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승자만이 가득한 세상보다 그나마 패배자가 있어 더욱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세상”이라는 그의 역설(逆說)은 그래서 짓 궂게만 여길 일은 아니다.
속을 들여다보면 세상 이치가 거의 그렇다. 세상에 패자가 없다면 승자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꼴찌가 없는 데 어떻게 당당한 1등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선거도 마찬가지다. 낙선자가 없다면 회심(會心)의 미소를 머금은 당선자의 화려한 영광이 나올 리 없다.
역설적이게도 당선자들의 1등 공신은 낙선자들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절망 이겨야 희망 엮을 수 있어
쓰나미(지진해일) 현상 같은 ‘5.31 지방선거’ 회오리가 휩쓸고 간 뒷자락에 서서 ‘위대한 패배자’를 떠올리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제발 오해 없기 바란다. 낙선자들을 비아냥거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좌절과 허탈감에 빠진 그들을 욕보이거나 약 올리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절망을 뛰어넘어 희망을 엮어내라”는 격려를 하고 싶어서다. 새로운 도전을 하라는 뜻에서다. 그래서 ‘위대한 패배자’가 되라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일에라도 절망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 승리의 여신은 아무리 큰 시련이 있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의 편이라는 말도 있다.
사람을 주저앉히고 패배자로 만드는 것은 시련이나 고통이 아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절망적 좌절감이다.
일찍이 ‘헬렌 켈러’는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만이 강한 영혼을 단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기에 ‘5.31 지방선거’ 낙선자들은 낙선의 시련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엮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강한 영혼을 담금질할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된 것이기도 하다.
도지사후보들 '소주잔회동' 기대
이번 선거에서 낙선자들이 낙담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많다.
우선 그들은 당선자 못지 않게 많은 도민적 지지를 받았다. 그만큼 도민의 심부름꾼으로서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자, 피 말리는 접전을 보였던 도지사 선거 개표 결과를 보자.
도지사 당선자의 유효 득표율은 42.7%였다. 차점자 득표율 41.1%를 포함, 낙선자 두 사람의 득표율은 57.3%였다.
그렇다면 투표에 참여했던 도민 10명중 6명이 낙선자들을 지지한 것이 아닌가.
낙선자들이 의기소침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당당하게 제주발전에 동참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9개 지역구 도의원 당선자와 낙선자들의 득표율도 마찬가지다.
29명의 도의원 당선자 득표율은 38.7%였다. 낙선자들의 득표율을 합치면 61.3%다. 현상으로만 봤을 때 투표참여 도민 6~7명이 낙선자 편이다. 경기에서이기고 승부에서만 졌을 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던 낙선자들에도 박수를 보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침 도지사 당선자와 낙선자 모두 선거 결과에 승복, “화합과 협력을 통한 제주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이 한번 해보는 립 서비스나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니라면 ‘참으로 아름다운 제주의 선거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먼저 도지사 선거에서 경쟁했던 세 사람이 모여 도정 협력을 다짐하는 모습이 보고싶다. 거기서 화합과 일치의 소주잔이라도 나눈다면 얼마나 보기가 좋을 것인가.
이것이 도의원 당선자와 낙선자들에게도 도미노 현상으로 번져 화해의 잔을 돌리는 계기가 된다면 참으로 근사한 선거 뒤풀이가 될 것이다.
당선자들이 먼저 가슴을 열고 악수를 청할 일이다.
김 덕 남 (주필)